5. 나머지 일들......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성적으로 굉장히 예민해진다고합니다.
그러니까 이성적인 자제력과 합리적인 변별력이 다소 떨어지면서 원초적인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해석하면 맞을 겁니다.
실제로 병원에서 입원한 여자환자 중에는 엉뚱하게 임신한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녁시간에 하는 일 중 하나가 남자환자와 여자환자가 둘이 떨어져서 지내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상적인 그네들에게 노골적으로 함께 있다고 무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제 딴에는 자연스레 둘 사이에 끼어들려고 해보지만 어색한 것을 어쩔 수가 없었지요.
내가 이런 것까지 뭐라 할 권한이 있나 하는 회의도 들었고요.

여자환자 중에 노골적으로 저에게 접근한 환자도 몇 명 있었고 무척이나 순진했던 저로서는 무척이나 당황했던 일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환자중에 노골적인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곤 했던 30대 초반인 늘씬한 여자환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함께 숙직하는 간호사가 너무 피곤하다고 병실에서 잠시 눈 붙이고 온다면서 들어가고 저 혼자 간호사실을 지킨 적이 있었습니다.
잠시 쉰다던 간호사는 무척이나 피곤했는지 열두시가 넘어도 나오지도 않았고, 저는 그래서 아예 좀 쉬라고 혼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 여자가 간호사실로 들어와서 제 등뒤에서 유혹하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저는 그냥 책을 읽고 있었는데(읽는 척 하고 있었는데^^) 제 어깨를 잡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등을 돌려보니 그 여자는 환자복 윗도리를 벗어버린 것이었고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너무 당황한 저는 눈길을 둘 데 없어 헤매면서 옷을 추스려 입히고 겨우 병실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뒤로 며칠동안 저는 그 여자의 가슴이 눈앞에 어른거려 고생하였습니다.


증상이 매우 심한 환자나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는 병상에 눕힌 다음 팔과 다리를 묶어 둡니다.
처음에는 저는 그게 굉장히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생각해봐도 딱히 다른 방법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두시간쯤 묶어두면 근육이 뭉쳐져서 그런지 환자들은 어깨와 팔에 엄청난 고통을 호소합니다.
한번은 입원할 때에 엄청나게 중증인 젊은 남자 환자가 한명 있었습니다.
중증의 환자는 보통은 받지 않았는데 그 당시 병원 사정이 좀 좋지 않았나 봅니다.
그 환자는 오자마자 묶였는데 하루종일 침대에 묶여서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게 그 환자가 하루종일 중얼거리는 소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들은 말을 하루종일 쉬지 않고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병원에서 그 환자의 별명은 '녹음기'였습니다.
그때 저는 재미난 장난을 생각했습니다.
'장양'이라고 불리는 간호사가 한 명 있었는데 하는 짓이 왠일인지 좀 얄밉고 못마땅하게 보여 언제 한번 골탕 먹일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아침에 저는 중얼거리는 환자가 깨어나기 전에 일어나서 그 병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그 환자를 흔들어 깨운 다음에 "장양 눈은 족제비 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환자는 제 말을 알아듣고는 빙긋이 웃더니 그때부터 '장양 눈은 족제비 눈'이라고 반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날 아침에 그 환자에게 식사를 주러 간 사무장 사모님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고, 나중에 주사를 주러 들어간 장양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면서 나왔습니다.
그리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꼭 밝혀 내겠다고 그 환자를 하루종일 닥달했지만 그녀가 들은 대답은 '장양 눈은 족제비 눈'이란 말 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하루종일 장양의 족제비 눈은 더욱 가늘어 졌고 급기야는 다음 달에 쌍꺼풀 수술까지 받았답니다.

지금도 그 짧은 스물두살의 5개월간을 가끔씩 생각은 보곤 합니다.
그 짧은 기간동안 겪었던 많은 환자들 중에 확연히 정신병자로 보이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고 대부분은 입원했으니까 환자로 보이는 사람이었지요.
대부분은 너무 섬세하고 너무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으며, 잔정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학교 다녀올 때마다 쥬스 같은 것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주었던 이씨 아줌마, 어이없는 실연을 당하고 온통 우울해 하던 3월 말에 따스한 위로를 해주려던 환자 박씨 아저씨, 노래를 특히 잘했던 고등학생 환자, 청소할 때 함께 도와주던 배씨 아저씨, 퇴원후 한동안이나 책을 사들고 놀러왔단 대학생 하양...............
굳이 보고싶지는 않지만 때로는 생각하고픈 그네들입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한 발짝 밀려버린 연약한 영혼의 그네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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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란 제목의 사진입니다.
외국의 유명한 사진작가의 작품이지요.

작은 오솔길을 걸어가는 오누이...
따스하게 동생 손을 잡고 약간 앞에 서서 걸어가는 오빠..
이들이 걸어가는 그 곳은 따스하고 밝은 빛이고 또 희망입니다.

2000. 11. 21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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