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저는 비행기 타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태어나고 세번째 타 보는 비행기라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항 내 이동버스를 타고서 몇 번씩이나 옆에 사람의 티켓을 곁눈질하여 '미국 가는 비행기는 아니구나'라는 안도를 한 다음 비행기를 탔고, 그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서 미친듯이(?) 달리더니 문득 하늘을 올랐습니다.

아래와 위,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사방에 걸림이 없는 하늘을 난다는 건, 늘상 올려만 보던 하늘에서 세상을 굽어 내려 본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었습니다.
촛농으로 새 날개깃을 붙여서 하늘을 날다가 떨어진 먼 신화의 이카루스가 하늘을 그리도 날고 싶었던 심정을 약간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상의 자유를 위해 두개골의 용적도 줄이고, 뼈 속도 비우고, 이빨과 앞 다리도 버린 새들이 생각보다 우매한 족속만은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곧장 하늘로 치솟아..아침 하늘에 낮게 깔린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분간이 안가는 희뿌연 연기를 박차고 올랐습니다.
조금 더 높은 그 하늘에는 청청한 하늘이, 강렬한 아침 햇살이 살아있어 좋았습니다.
안개가 군데군데 잔설처럼 남아있는 남아있는 서울아침을 내려다 보면서 그렇게 출발을 했습니다.

제주에 도착해서 오전에 일을 보고 오후에는 잠시 짬을 내어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한라산을 중턱을 휘돌아 제주도를 횡단하는 도로를 따라 가다가 차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해발 1300미터까지 올랐습니다.
길 가장자리에 점점이 노랗게 피어 있는 야생 제비란을 보면서, 방품림으로 많이 심어진 측백나무를 보면서 가쁜 숨을 내쉬며 한라산 중턱을 넘어서자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고 있던 가을을 마주쳤습니다.
성급한 다래덩쿨은 벌써 단풍이 들었고, 졸참나무나 굴참나무에도 이미 붉은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구상나무, 주목, 소나무, 산죽의 초록빛이 상대적으로 더 짙어보이는 것도 가을의 징표였습니다.

서늘한 한라산의 초가을 산기운은 한동안 느끼다 두 눈 가득 초가을을 담고 다시 내려왔습니다.

제주발 서울행 밤 9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도 채 못되어 서울하늘에 도착했습니다.
맑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 밤풍경은 형형색색의 네온등과 차량불빛, 가로등 불빛으로 마치 불꽃놀이를 벌이는 듯 고왔습니다.
'아~ 인간의 사는 모습도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저리도 고와 보이구나...'
우리네 인간은 어찌보면 멀어질수록 고와 보이는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눈에서 멀어질수록 우리네 사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오고, 기억이 흐려질수록 그 기억은 아름답게 포장되듯이....

우리네가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쩌면 약간의 거리를 두는 일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서울의 밤 풍경이 공항에서 집에 오는 길에서는... 단란주점의 간판이거나, 한순간의 즐거움으로 유혹하는 나이트 불빛이었고, 점점이 떨어져 조화미와 통일미를 보여주던 가로등 아래에는 술 취한 우리네 아저씨들이 기대어 흐느적 거리고 있었습니다.
한 줄로 줄을 지어 곱게 뵈던 차량의 불빛들은 서로 한발 먼저 가려고 끼어들기를 하고 경적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네가 잘 안다는 게, 자세히 안다는 게 어찌보면 보다 빨리 식상하고 멀어지는 이유일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 밤이었습니다.


지난 9월말 제주도에 하루짜리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생각을 적어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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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입니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입니다.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 해발 500 ~2,000m사이의 고산지대에 분포하나 최근에 정원수로도 키울 수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무 자체에 향기가 난다고 들었는데 제주도에서 맡아보니 그리 강한 향기는 못 느꼈습니다.

2000. 10. 20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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