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욱이는 올 봄부터 YMCA에서 운영하는 아기스포츠단에 다닌다.
경욱이는 아기스포츠단이 무척 맘에 들어하는 눈치이다.
도심을 벗어난 벌판에 세워진 체육과목 위주의 유치원인데, 염소도 있고 풀도 있고 시원한 공기도 있는 그러한 곳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가족이 함께 경욱이가 새로 다니는 유치원에 구경을 갔다.
몇번을 헤매다 겨우 찾아서 가니까, 때 마침 선생님들이 정리한다고 나와 계셨다.
경욱이는 지체없이 원내로 들어가더니 맘껏 뛰어 다니며 나에게 유치원 곳곳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하는 한마디

"아빠~ 여기선 막 뛰어다녀도 때리지 않아요~"

아마도 작년에 다닌 유치원에선 지나치게 엄격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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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에는 유치원에 다녀온 경욱이가 집에 들어오자 마자 갑자기 마누라 치마를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한판 했단다.
사연인즉, 옆집에 사는 상구와 다른 친구는 '디지몽 신발'이 있는데 자기는 왜 안 사주느냐는 것이었단다.

2월 말경 윤석이 신발을 사러 백화점에 가서 신발코너에서 윤석이 신발을 고르고 있을 때 경욱이가 와서 속삭였다.

"아빠~ 나도 신발 하나 사주면 안되요?"

그냥 대수롭지 않게 거절하기엔 너무 간절한 눈빛이었다.
사실 경욱이는 태어나고 지금껏 경욱이 몫으로 신발이나 옷을 사준 적은 거의 없었다.
두 살 터울인 지네 형이 입던 옷이나 신던 신발을 고스란히 물려 받고 있던 터였다.
그전에도 가끔씩 경욱이가 새로 산 형 신발을 형이 없을 때 한번씩 신어보곤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이놈도 이제 자기 만의 것을 갖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그렇게 정색을 하고 사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
그냥 말로 달래어서는 안 통할 것 같은 생각에 맘에 드는 신발을 몇 개 고르라고 시켰다.
경욱이가 고른 신발은 모두 자기에게 큰 신발이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곳은 초등학생용 신발을 파는 곳이었으니까...............
경욱이가 고른 신발을 바닥에 내려놓고서는 경욱이에게 신어보라고 했다.
경욱이는 신이 나서 신발을 신는다.
그러나 초등학생 신발이 맞을 리는 만무했다.
어른 손가락 한 두 마디는 큰 신발이었다.

"경욱아~ 이건 너무 크지?"
"아빠! 다른 신발 신어 볼래."

이번엔 다른 신발을 신고서는 발을 최대한 뒤축에 갖다 붙이고 어색하게 웃으며 한마디 한다.

"아빠! 이건 꼭 맞네..."
"어디 보자~"

한 손으로 발을 잡아 신발 앞쪽으로 밀어붙이고 다시 손가락을 세 개나 뒤축에 밀어놓고서는 한 마디 한다.

"경욱아~ 이것도 너무 큰데 어쩌지?"

어쩐지 억울해 하는 경욱이를 보고 다시 한마디 하면서 신발사기를 포기시킨다.

"경욱아~ 너도 이담에 형아처럼 초등학교 가면 발이 커지고 그럼 그때 새 신발 사 줄께."
"밥 많이 먹으면 발이 쑥쑥 커져?"
"그럼 당연하지"

그렇게 신발사기를 포기시켰다.
사실 신발값이 비싸기도 하려니와 윤석이가 신던 신발이 아직도 상한 곳이 하나 없는데 새로 신발을 산다는 것은 스스로 쉬이 용납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신발사기를 단념시켜왔는데,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모두 디지몽 그림이 그려진 새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에 무지 속상했었나보다.
사실 자기 친구들은 대부분 맏이거나 외동인데, 그걸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대성통곡한 날 마누라가 전화로 그 일을 말하면서 '나중에 아빠 오시면 물어보고 아빠가 사라고 하시면 사줄께'라고 말했으니 집에 와서 신발 사주기로 약속해 주라는 것이었다.
그날 퇴근하여 경욱이에게 신발을 사준다고 말하자 경욱이는 특유의 반달웃음을 지으며 무척이나 신나했다.


그러나,
경욱이는 아직 자기 신발을 사지 못했다.
그날 저녁부터 목감기가 심해져서 39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시달리면서 봄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야 열이 잦아드는 걸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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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 옆집인 큰집에 가면 뒤란에 작은 옹달샘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옹달샘 이름은 "찬샘"이라고 불렀는데, 여름에는 손이 시려울 정도로 차고, 겨울에도 얼지 않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샘이었지요.
여름에 그 샘에 가면 김치단지와 막걸리 주전자가 내내 물에 담겨져 있어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 냉장고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그 샘이 있는 위쪽에는 초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줄기와 푸른 잎이 달린 관목이 무성했고, 늦은 봄부터 그 관목에는 노란 아주 샛노란 꽃이 피었지요.
커서도 그 노란 꽃을 보노라면 항상 그 샘이 생각나고 그 꽃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그 샘 언저리라 생각하곤 하였지요.

그 꽃의 이름이 내내 궁금했는데, 이제사 그 꽃이름을 알았답니다.
황매화 또는 죽도화라고 합니다.
습기가 있는 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높이 2m 내외이며 무더기로 자랍니다.
야생하는 것은 볼 수 없고 관상용으로 흔히 심고 있으며, 한국·일본·중국에 분포한답니다.
꽃잎이 많은 것을 겹황매화(for plena)라고 하는데 제가 본 것은 겹황매화입니다.

2001. 3. 27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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