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해가 저물 무렵 집에 전화를 했다.
신호가 몇 번 가고 윤석이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이놈의 전화 목소리는 원래 이렇게 느려 터졌는데, 오늘따라 힘도 없어 보였다.
"응~ 아빠야. 뭐하니?"
"그냥 집에 있지."
"엄마는?"
"상구네 집에 경욱이랑 놀러갔어."
"넌 집에서 뭐하는데?"
"말 안 해. 비밀이야."
"너 지금 컴퓨터 하지?"
"컴퓨터 안 해."
"그럼 뭐해? 말해봐~"
"안돼. 이건 가족끼리도 말 할 수 없는 그런 비밀이야.
"...........-_-;;"
"아빠! 나 전화 끊어"
그리곤 전화를 끊는다.
밤 11시에 퇴근을 하니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고 아내는 기분이 별로인 눈치다.
"뭔 일 있어?"
"윤석이 땜에 속상해 죽겠어."
"왜""
"오늘 또 받아쓰기를 했는데 세 개나 틀려서 70점 받았어."
"잘 받았는데 뭘...^^"
"몰라서 틀린 게 아니라 아는 것을 덜렁댄다고 다 틀려서 그렇지."
그러면서 시험지를 가지고 와서 보여준다.
윤석이가 받아쓰기를 한 시험지를 훑어보면서 나는 피식 웃는다.
'학교에 갔습니.." (×)
'축구를 했습다" (×)
뭐 대충 이렇게 틀렸다.
결국 아는 것을 대충 빼먹고 덜렁거리다 틀린 것들이다.
첨에는 받아쓰기를 하면 대부분 100점을 받아오던 녀석이 요즘 들어서 자꾸 이런 식으로
틀리는 게 못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괜찮아.. 아는 것들인데 뭐...."
"아니, 난 이게 더 맘에 안 들어"
윤석이는 글을 참 빨리 깨친 편이다.
학교에 가기 전부터 동화책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속도로 읽고, 요즘도 하루에
두 세권 정도는 읽는다.
그러다 보니 세세한 맞춤법 따위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하여튼 윤석이는 오늘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반성문을 썼다고 한다.
결국 오후에 전화한 시간에 가족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중대한 비밀이란 건 반성문
쓰는 거였던 모양이다.
다음은 윤석이가 어제 쓴 반성문 전문이다.
~~~~~~~~~~~~~~~~~~~~~~~~~~~~~~~~~~~~~~~~~~~~~~~
나는 받아쓰기를 할 때 덜렁거려서 빠뜨린다.
그래서 엄마한테 혼났다.
그리고 오늘 70점을 맞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기분이 않좋다.
그리고 다 쓰고 검사를 해보라고 하는데 나는 검사를 않한다
그리고 책, 음악, 피아노 뭐든지 덜렁댄다.
나는 이제부터 덜렁대지 않고 말을 잘 듣는 내가 될 거고 뭐든지 잘 할거다.
~~~~~~~~~~~~~~~~~~~~~~~~~~~~~~~~~~~~~~~~~~~~~~~
윤석이는 이제 반성문까지 쓸 정도로 자랐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반성문 쓴 건, 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그때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이랑 집에 오는 길에, 다리 아래에서 '도리짓고땡'을 하다가
국어선생님께 들켜서 일주일간 교무실 앞에서 무릎꿇고 반성문을 쓴 적이 있지요.
그때 머리 속에서 일주일 내내 반성한 건 바로 이거지요.
"삼팔광땡을 잡고도 멍청하게 죽다니....다음부터 화투를 꼼꼼이 봐야지..."
~~~~~~~~~~~~~~~~~~~~~~~~~~~~~~~~~~~~~~~~~~~~~~
꽃이 참 아름답지요.
마치 새하얀 백로가 날아가는 것 같지요?
해오라비 난초(일명 백로초)입니다.
꽃은 7∼8월에 피며 지름 3cm 정도로서 1∼2개가 원줄기 끝에 달리고
백색의 해오라비(백로)가 날아가는 듯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사무실에 있는 달력에 나오는 것을 처음 봤는데, 꽃 생김이나, 이름이 예뻐서 같이
보자고 올려봅니다.
2001. 6. 21. 월급날 ^^

'두 아들의 아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귀 며느리 밥풀꽃> (0) | 2001.07.18 |
---|---|
변명 더덕> (0) | 2001.07.10 |
산성비 유감 城> (0) | 2001.06.15 |
팽이 (0) | 2001.06.13 |
친구(3) <양귀비> (0) | 2001.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