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땅에 봄은 오지 않았다.

산하대지는 그대로인데 이 땅의 농민들은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그 농심은 또 그대로였다.

그게 더욱 슬펐다.

.

.

지난 5월이던가...

인터넷에서 아내가 “영천 별빛축제”가 열리는데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자문단 20명을 모집한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확인하니 자문단 20명을 선발하고 자문단은 가족 4명에게 7월 28부터 30일까지 숙식을 제공하고 각종 체험행사를 하도록 하며, 이들로 하여금 영천을 알리고 영천별빛축제를 홍보케 한다는 취지였다.

우리가 또 누구이던가?

해마다 공짜여행을 다녀오지 못하면 입안에 탱자나무가 자라는 가족이 아니던가?

그래서 즉각 자문단 지원서를 작성하여 윤석이가 작성한 것인 양 보내었고, 당근 당첨되었다.

 

                      

                        <축제를 알리는...........찌.라.시 -.->


7월 28일

며칠째 장마에다 태풍으로 날씨 걱정이 많았는데, 역시나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8시 조금 지나서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내려갔다.

충청도를 지나면서 비가 개고, 꾸물대다가 동료를 놓친 구름 조각들이 산 중턱에 걸려 있었다.

우리는 차창을 다 열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온 가족이 노래를 부르며 맘껏 시원한 공기와 시원한 산야를 즐겼다.

입과 귀와 눈이 동시에 시원했다.

                

                     < 문경새재에 걸린 구름들...>

 

 

대구를 거쳐 영천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도착하자마자 행사본부를 찾아서 식권 20장과 텐트 일체를 받은 다음 식사부터 했다.

점심으로 선택한 것은 ‘장터국밥’............

국물이 많고 고기는 별로이지만 그래서 더욱 시원한 경상도 특유의 국밥이었다.

온 가족이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텐트를 설치했다.

가건물 안에 설치하려다가 나무 그늘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다 치고 자문단원이 모여서 일정설명을 들은 다음 개별 일정으로 천체설명, 천체사진관람, 보현산 천문대장의 강연 등을 듣다가 저녁을 먹은 다음 주행사장에 가서 개회식을 기다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자문단원 가족에게 지급된 비닐 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나니 든든하다.

그런데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온다.

게다가 그런 행사장에 꼭 얼굴을 비추는 구케으원, 시의원...머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줄줄이 와서 안면을 들이대는 꼴불견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아이들 데리고 텐트로 돌아왔는데...................

아.....뿔.....사.........

텐트를 치고, 영천시에서 지급한 고급향까지 피운 것은 좋았는데, 텐트를 열어놓았던 것이다.

옷가지는 성한데, 입구에 둔 이불이 몽땅 젖었고, 바닥은 물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래서 제2의 텐트를 가건물 안에 다시 설치하고 운영위에 부탁을 해서 담요한 장과 이불 한 장을 빌렸다. ㅡ.ㅡ;

그렇게 텐트치고 난리하다가 첫째 밤이 저물고 잠을 청하는데, 그 밤은 참 힘들었다.

먼저 가건물 안에 텐트가 여러 채 있다 보니 후덥지근했고, 낮에 내린 비로 텐트 안은 눅눅하기 그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텐트를 활짝 열어놓을 수 없었다.

받아온 요는 너무 얇아서 내 뼈는 바닥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어쨋거나 하루가 지났다.

 


7월 29일

9시부터 자문단은 포도수확체험, 포도주 만들기, 영천 유적지 관람, 농사시설관람 등의 행사가 있어서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먼저 둘러본 곳은 포도농장..

비닐하우스로 재배한 포도는 벌써 익어가고 있었다.

한 가족당 포도를 2KG을 따는데, 무게가 근접하게 딴 3가족과 수확한 포도의 당도가 높은 3가족에게 뽕잎 차 세트를 선물로 준다고 했다.

거봉포도를 땄는데, 그 달콤함이라니.................

우리가족의 목표는 많이 따고(3KG 이상....^^), 당도 높은 것에 우승상품을 노린다는 작전으로 들어갔는데, 농심을 생각하다보니 많이 따지도 못했고 당도 측정에서 밀려서 상품권에서 일찌감치 멀어졌다.

                           

                            

                             <포도농장에서..........>

 

                              

 

포도밭을 떠나서 간 곳은 무슨 기계에 포도를 통과시키면 포도에 함유된 항암성분(안내하시는 분은 항암예방성분이라고 했다. ^^)이 10배가량 증폭된다는 기계가 있는 곳이었는데, 다들 포도밭에서 딴 포도를 통과시켰다.

그렇게 통과시킨 포도는 “레스베라포도”라고 하며 값이 2배 가량 더 비싸단다.

그 다음에 들린 곳은 경북대학교와 영천시가 합작해서 포도쥬스와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에 가서 포도주와 포도쥬스를 시음하고 포도주를 직접 만들고 그렇게 만든 포도주를 집에 가지고 가는 것이다.

포도 3kg을 따서 씻은 다음 손으로 잘 문질러주고 설탕과 효모를 넣어 손으로 잘 버무린 다음 통에 넣어 보관하면 된다.  여기서 설탕을 넣는 것은 포도주를 달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콜도수를 높여주기 위한 거란다.


그렇게 만든 포도주를 한통씩 들고 옮긴 곳은 임고초등학교 교정.

유한킴벌리에서 아름다운 숲을 선정했는데 당첨(?)된 곳이란다.

아담한 교정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진다.

아름드리 전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가 교정을 돌아가며 심어져 있었는데, 그야말로 운동장 전체가 나무에 덮여 있다고 할 정도로 가지가 넓게 뻗고 무성했다.

                   

    

                   

                          <임고초등학교 교정의 나무, 나무 앞의 세부자..>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이어서 벌어진 게임..........

초등학생은 포도알 멀리 뱉기, 어른들은 다트 6개 던져서 점수합산하기 게임이다.

각 게임에서 3등까지 뽕잎차 한상자씩이다...

윤석이와 경욱이 그리고 나는 심기일전을 하는 맘으로 준비를 한다.

먼저 초등학생의 포도알 멀리 뱉기 게임.........

아이들은 멀리는 4미터 가까이는 수 십 센터까지 기록이 나오고....드디어 청도김씨 36대손 윤석군이 출전을 한다.

비장한 표정으로 금 앞에 선 윤석이가 포도알을 뱉어내고 주위의 탄성이 들린다.

무려 6미터 70센티.....신기록이다.

우쭐해하는 윤석이 뒤로 경욱이가 출전하더니 다시 5미터 40센터..2위의 기록을 낸다.

결국 초등학생의 게임에서 윤석이가 1등, 경욱이가 3등을 해내었다.

이어 벌어진 다트게임에서 중간 정도에 내 차례가 왔다.

점수는 480점..그때까지의 기록에서 1등이다.

마지막 선수까지 던지고 난 결과는 3등이다.

게임이 끝나고 주최측이 나를 따로 부른다.

한 가족에게 3명씩 상을 주면 다른 가족이 서운해하니까, 경욱이는 양보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양보할테니 경욱이에게는 상을 줄 것을 부탁하였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결국 경욱이는 뽕잎차를, 윤석이는 포도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다.

아이들은 우쭐해하면서 내가 상을 못탄 것을 아쉬워 했다.(아이들에게는 4등을 했다고 말을 했다)

                   

 

                  

 

                 

                         <포도알을 뱉는 윤석이, 상받는 경욱이, 윤석이>


게임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임고서원. 정몽주 선생님을 기리는 곳이고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 사액서원이란다.

서원 대청마루에서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3시...

그 이후로 동요부르기 대회 등이 있었는데, 우리 가문과는 인연이 아주 먼 것이라서 아이들을 강가로 데리고 가서 수영을 하게 했다.

                         

 

                           

 

                  

                                            <임고서원과 배롱나무...>


그렇게 놀다가 돌아오니 또 비가 비친다.

눅눅한 텐트에서 하룻밤 더 잘 생각하니 영 자신이 없고, 샤워를 시원하게 하고픈 생각이 온 몸속을 파고 들었다.

아이들은 텐트에서 놀아라 하고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인근 동네를 돌아다녔다.

민박집이라고 있나 해서 돌아다녔는데, 집이 없었다.

아내의 소망이 간절한데...남편인 내가 잘 하는 것은 이런 문제의 해결이다.

결혼 전부터 이런 문제에 부딪히면 다 해결해왔더니 아내는 당연히 방 하나 쯤은 해결할 거라 믿는 눈치이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행사장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먹거리 장터에 가서 행사장이 있는 마을(충효마을)의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추어탕집을 찾아들었다.

말이 부녀회이지 모드 일흔은 넘은 분들이셨다.

우리나라 농촌 어디를 가더라도 비슷할 것이다.

단 두 가지 메뉴인 추어탕과 부침개를 시켰다.

양도 푸짐하고 입맛에도 맞았다.

음식을 다 먹고 난 다음에 그분들게 하루밤 묵을 방 좀 빌릴 수 있냐고 여쭈었더니, 서너분이 초대를 하신다.

민박집 해결 끝!!!!!!!!

행사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시골집에 숙소를 옮겨놓고 쉬다가..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행사장으로 갔다.

               

                                      <민박집 앞에서 찍은 논...>

 

오랜만에 별빛도 보인다. 목성도 보이고, 북두칠성도 보이고.................

행사장에 가서 천체망원경으로 별도 몇 개 봤다. (사실 육안으로 보는 것 보다 더 밝은 것 말고는 아무 차이도 없더만....^^)

관측을 하다가 별자리 설명을 하는 경북대학교 학생에게 누군가가 큰곰자리를 물었고, 그 학생은 북두칠성을 포함한 별을 가리키며 설명해준다.

그때 한마디 거들었다. 딱 한마디....

“학생이 보기에 저게 큰곰이라고 보입니까?”

“............ㅠ,.ㅠ..”

                  

                              <디카로 찍은 별, 목성이다>


 

그렇게 행사장에서 놀다가 다시 어두운 밤길을 걸어 민박집으로 갔다.

어두운 밤길에서 경욱이는 ‘내 다리 내놔라’란 말 한마디에 질겁을 했다.



7월 30일

이날도 행사가 있었지만, 일찍 짐을 챙겨서 아침심사를 하고 포항으로 떠났다.

영일만을 가보기 위해서이다.

포항에서 한참이나 꼬불거리는 해안길을 지나서 영일만이 있었다.

해는 쨍쨍 내리쬐고..............그야말로 서둘러서 손바닥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박물관을 들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영일만 다녀온 증거..:-) >

 

다음 행선지는 강구항

영덕대게를 먹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잠을 자고............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도착해서 대게를 먹었다.

대게에 대한 소감은............

‘되게 맛있고, 되게 비싼 음식이다. ^^’


대게를 먹고 난 다음 인근에 있는 자그마한 해수욕장을 들렀다.

아이들은 바로 물에 뛰어 들었고, 나와 마눌은 상품으로 받은 포도를 먹으면서 백사장에 우산을 쓰고 앉았다.

아이들은 때마침 떠내려온 통나무 큰 걸 하나 주워서 둘이서 무려 3시간 동안이나 밖에 나오지 않고 놀았다.

하여간 두 놈은 물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튜브 하나 빌리는데 만원, 샤워값이 1인당 2천원........많이 비싸더라.

                     

                    

                   <통나무 타고 노는 아이들..두시간은 족히 놀았다.>


6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행선지는 안동.

해저무는 저녁에 영덕을 거쳐서 청송을 지나서 임하댐을 끼고 달렸다.

그 길 하나 하나는 그림같은 광경들이었다.

밤이 이슥하여 안동 시내에 도착했다.

목표는 헛제사밥이었는데, 결국은 간고등어 정식집으로 갔다.

고등어 정식 3상에 밥 한공기 추가..............

배가 고파서인지...고향 비스무리한 음식이라선지 맛이 좋았다.

안동에서 하룻밤을 자고 하회마을을 들리자는 의견과 그냥 집에 가서 쉬자는 의견이 대립하다가, 결국 그냥 집으로 가자는 의견이 이겼다.


7월 31일

집에서 푹 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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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차로 달리다보면 가슴아픈 광경이 많다.

나이 많이 드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을 하는 풍경은 어느덧 농촌의 자연스런 풍경으로 되었다.


아스팔트에 반쪽을 걸친 채 기우뚱하니 경운기를 몰고가는 할아버지와 그 뒤에 앉아서 뒤에 오는 차를 연신 살피는 할머니..

아스팔트 가장자리를 뒤를 돌아보면서 걸어가시다, 승용차가 쌩하니 달려오면 얼른 풀섶으로 내려서시는 노인들.....

원래 그 길은 그들이 어렸을 적에 낮이나 밤이나 맘 놓고 활보를 하던 자신들만의 길이 아니었던가?

가끔씩 지나치는 차들이라도 있을라 손 치면, 먼지 뒤집어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서서 손을 흔들어 주던 그들이, 이제는 오가는 차들에게 도로를 모두 빼앗긴 채, 눈치를 보며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미명아래 그들의 길을 빼앗기고, 좁은 인도마저 빼앗기고 눈치를 보며 그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아들 딸이 모두 떠나가버렸고, 그 길을 따라 우루과이 라운드니, FTA니 하는 것들이 들어와서 그들의 마지막 남은 생존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시골길을 달리노라면 시원한 바람도 좋고 푸르른 초목도 좋지만, 인도없는 그 길이 자꾸 슬퍼진다.

둘째 날, 장터 먹거리판에서 추어탕을 먹고 있을 때, 할머니 한분이 국물이 적다면서 한 그릇 가득 다시 채워주시고, 부추전이 부족하다면서 한 장을 덤으로 얹어 주시던 그 마음씀씀이가 더욱 슬프게 한다.


2006. 8. 1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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