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소풍


그곳에 가는 42번 국도와 번호를 잊어버린 편도1차로의 지방도로변에는 가을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여름'이라고 표현되는 여름동안 도로변을 노랗게 물들이던 멕시코해바라기는 검게 말라가는 잎새 사이로 시들어가고, 이제 막 피어난 코스모스가 하얀색, 진홍색 혹은 핑크빛으로 자동차의 속도에 밀리면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낮은 야산 턱에는 들국화로 통칭되는 구절초가 군데군데 피어 있고, 코스모스 사이로 인위적으로 가꾼 연보라빛 개미취가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도로변 논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들이 가끔씩 부는 뽀송뽀송한 가을바람에 황금빛 파도로 춤을 추고, 벌써 벼베기를 하는 성급한 농부들도 보였습니다.

아침 9시에 도착할 계획으로 출발하였는데, 10분 정도 늦은 시간에 도착하였습니다.
용인에 있는 용수농원,
알밤 줍기 행사를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여러모로 재다가 선택한 사냥터였습니다.

재작년 우연히 덕소에 있는 연세대학교 농장에 알밤 줍기 행사를 참가한 적이 있었고, 아이들이나 아내 모두 즐거웠던 그때의 기억과 군밤의 달콤한 기억이 저를 들쑤신 거지요.
아침 7시30분에 곤히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긴팔 옷과 운동화를 신고 7시 45분쯤 출발을 했습니다.
원래는 7시 40분에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우리 집 꾸물이 윤석이가 꾸물대었고, 예의 현관버릇(어제는 한쪽은 운동화, 한쪽은 샌들을 신다가 제가 지적해서 고쳤습니다) 때문에 5분 정도 늦은 거지요.

제가 도착한 시간에는 아직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밤은 밤새 떨어진 것들이 단단히 여물고 벌레가 덜 먹은 것이기에 서두른 것입니다.
도착하여 입장료를 물어보니 토요일 날 전화 통화 때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른 1명당 만원, 아이들은 6천원을 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돈을 지불하니 양파주머니로 사용하는 작은 주머니 네 개를 주었습니다.
그걸 받아든 아내와 그걸 본 저는 서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아내 : '에게게~ 요게 뭐야?'
맑은날 : '××야~ 조게 모야?'

어른용이라는게 세로 20, 가로 10정도이고, 아이들용은 세로 15, 가로 10정도의 초미니 주머니였습니다.
예전에 덕소에 갔을 때는 성인 1인당 5,000원내고 큼지막한 주머니 두 개를 받았었는데....
용인까지 달려온 길(약 60Km)이 아까워서, 그리고 오랜만의 가족소풍을 망치기 싫어서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아이들 손잡고 밤나무 밭에 들어갔습니다.
몇 년 째 알밤줍기를 개최하는 농장답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밤나무도 큼지막하니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경욱이는 탄성을 지릅니다.

"아빠! 여긴 완전히 밤나라야. 그치?"

군데군데 큼지막하니 알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밤을 줍다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큼지막한 알밤을 발견하고 줍는 기분은 정말 최고입니다.
윤석이와 경욱이는 서로 앞을 다투어 뛰어다니면서 밤을 줍습니다.
그곳의 밤은 끝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이 빠진 빈 밤송이와 누군가 주웠다가 벌레 먹은 거라서 버리고 간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알밤을 줍기를 한시간 정도 하다가, 저의 원시적인 본능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억제할 수 없는 본능에 나무를 탔습니다.(전 진화론을 믿습니다)
유독 굵은 밤이 떨어진 큼지막한 나무를 고른 다음 아이들과 아내를 멀리 보내놓고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를 부여잡고 흔듭니다.
그러면 알밤이랑 밤송이들이 후두둑하면서 떨어져 내리고 그렇게 몇 번을 흔든 다음 나무를 내려와서 알밤을 주웠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하자 작은 주머니 네 개는 금새 가득 차고 넘칩니다.

그래서 우리가족은 밤나무 아래에서 주운 밤을 다 꺼내 놓고 선별작업을 했습니다.
굵고 벌레먹지 않은 것들만 골라서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남는 밤은 제 청바지 주머니 양쪽에 가득 넣습니다.
그리고 경욱이랑 윤석이 바지 주머니도 채웠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밤은 비닐봉지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두시간 정도 밤을 주운 다음 밤나무그늘아래에서 쉬면서 갖고 온 포도를 먹은 다음 밤나무 밭을 나갔습니다.
저나 두 아들놈의 바지 주머니는 밤으로 불룩하니 삐져 나왔고 저는 남방을 바지 밖으로 뺐는데도 불룩하니 보였습니다.
저 만치 농장 입구가 보입니다.
농장입구에는 치사하게도 아주머니 한 분이 주머니 검사를 하며 주어진 주머니를 초과한 밤은 옆에 큼지막한 포대기에 회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불러 긴급작전회의를 짰습니다.
사실 입장료 3만2천원으로 밤을 사면 주머니 네 개의 밤보다는 훨씬 많을 것 같아서, 본전심리 때문에 그냥 갈 수는 없었지요.
작전회의에서 나온 작전은 '팔을 주고 목숨을 구한다'라는 작전이었습니다.
즉 비닐봉지에 따로 넣은 밤으로 자수하여 광명찾는 척 하면서 호주머니의 밤은 가지고 가기로 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내보고 비닐주머니를 들게 하고 전 경욱이를 업고 아내 뒤를 따랐습니다.
경욱이를 업은 이유는, 경욱이를 업으면 제가 허리를 숙이는 게 자연스럽고 그러면 바지주머니가 툭 튀어 나온 게 남방으로 자연스럽게 가려질 것이고, 아이업은 사람 주머니를 보자고 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지요.
아내가 앞장을 서고 전 경욱이를 업고 그 뒤를 따르고, 물정 모르는 윤석이는 꼬챙이 하나를 들고 뒤를 따르는데, 제 등이 무척이나 결립니다.
경욱이 체육복 바지 주머니가 양 옆으로 삐져 나오지 않도록 모두 제 등뒤로 숨겼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입구에 도착한 아내는 도착하자마자 비닐봉지를 보여주면서 말을 합니다.

아내 : "아줌마~ 이건 약간 벌레 먹은 건데 버릴 수 없어 주어왔는데 어쩌지요?"
보초 : "그건 못 갖고 가요. 여기다 부으세요."
아내 : "에이~ 여긴 주머니가 너무 작아요. 이것 그냥 주시면 안돼요?"

그 틈을 이용해 나와 윤석이는 은글슬쩍 입구를 빠져 나왔습니다.
좀 있다 아내가 비닐에 담은 밤을 다 내어주고 몇 개를 얻었다면서 웃으며 다가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대충 반 본전은 찾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좀 치사합니다.^^
그렇지만 사치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농장을 탈출하여 다시 상쾌한 들길과 산길을 달리다가,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경욱이는 내내 밤 노래를 부릅니다.

"고요한 밤 ♬~, 거룩한 밤 ♪~"



그날 저녁에 밤을 구워서 옆집에 계시는 할머니께 구운 밤과 알밤을 담아서 나눠 드렸습니다.
그 할머니는 나누어 먹는 걸 즐겨하시는 분입니다.
며칠 전에도 아이들이랑 아파트 앞 벤치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가게에 가시다가 저희가족을 본 할머니는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네 개를 사서 먹으라고 주시는 그런 할머니입니다.
제가 밤을 가져다 드리려고 나가니까 아내가 뒤에서 당부를 합니다.
"그릇은 받아와~"
밤을 갖다드리고 돌아오니까 아내가 그릇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나무랍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그 할머니는 절대로 빈그릇을 가지고 오시지 않아서, 부담드리기 미안해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경욱이를 시켜서 다시 그릇을 가져 오라고 시켰습니다.
(경욱이는 가끔씩 할머니한테 가서 볶은 콩을 달라고 졸라서 얻어먹는 그런 사이입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의 경욱이 손에는 벌써 천원짜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어제 밤에는 밤 늦게 밤을 삶아서 늦은 밤에 아이들이랑 밤을 먹으면서, 저는 족집게로 온 몸에 박힌 밤 가시를 빼다가 밤 늦게 잠을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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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가족소풍이었습니다.
경욱이는 밤을 무척이나 즐깁니다.
어제도 밥을 먹고 난 다음에 밤을 열 알 정도나 먹었답니다.
밤은 원래 한 송이에 세알(세톨배기)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나무의 영양상태에 따라서 보통은 두알(두톨배기)이 들어있고 한알(한톨배기)도 많습니다.
제사 때 쓰는 밤은 외톨배기와 세톨배기의 가운데 것은 사용하지 않고, 반달모양의 알밤만 사용합니다.
그리고 알밤을 까보면 그 안에 밤알이 두 개가 붙어 있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짝밤이라고하며, 둘 다 먹으면 쌍둥이를 낳는다고 하여 나누어 먹습니다.
그런데 전 두 개 다 먹은 적이 있는데 쌍둥이를 낳지 않았습니다.
옛말도 틀릴 때가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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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취입니다.
국화과에 속하고 9월에 주로 피며 전국각지에 깊은 산에 핍니다.
요즘은 길가에 심어져 있는 것이 자주 보입니다.


이제 곧 추석이네요.
여기 오신는 모든 분들...
가을 저녁같이 여유롭고 넉넉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가을에는..................

2001. 9. 24.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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