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원이 주는 행복
어제 퇴근길이었습니다.
어제는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날은 집에 가는 길이 좀 번거롭습니다.
택시나 버스를 타고서 지하철역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을 35분간 이용하고 내려서 택시를
타거나 걸어서 귀가를 합니다.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좀 번거롭긴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서 잠시 졸거나 책이라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도 있기는 합니다.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엮은 책 한 권 손에 들고 사무실을 나서서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망설이다가 잠시 버스를 기다려보기로 작정하면서 버스정류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때 마침 버스가 옵니다.
때 마침 오는 버스가 교차로에서 녹색 등을 보는 기쁨과 다를 바가 없다고 속으로 미소지으며
동전을 600원 떨어뜨립니다.
자리도 하나 있습니다.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바로 뒤따라오는 중년의 남자보다는 걸음을 빨리하여
하나 남은 자리를 무리없이 선점합니다.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쳐들고 네 정거장쯤 지났을 즈음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이 주는 압박감이
없음을 느끼고 서둘러 손으로 더듬어 봅니다.
'이런!! 지갑을 사무실 두고 왔구나!!'
재빨리 주머니 속의 동전을 세어봅니다.
400원이 남아있습니다.
지하철 요금은 900원이므로 500원이 부족합니다.
머리 속에 생각을 굴립니다.
'지금 내려서 다시 버스 타고 되돌아갈까?'하고 생각을 하다가 되돌아 갈 버스비가 없습니다.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직원에게 지갑을 가지고 역으로 나오라고 하려다 그것도 막히는
시내에서 직원에게 번거로움을 주는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몇 번을 궁리하다가 그냥 지하철역에서 어떻게 해결하기로 작심하고 책을 폅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집중적으로 궁리를 합니다.
매표하는 역무원에게 돈을 빌려볼까 생각해보지만 하루종일 쉴 틈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직무상 짜증을 낼 것 같습니다.
그때 파출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 민중의 지팡이가 있었지...'
파출소에 들어갑니다.
때 마침 민원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근무중인 경찰이 3명 있습니다.
무궁화잎 세 개를 단 나이 지긋한 분, 두 개를 달고 있는 다소 젊은 사람, 그리고 한 개를
어깨에 얹은 젊은 경찰이었습니다.
그 중에 두 개를 달고 있는 경찰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500원만 빌려주면 내일 아침에
되돌려 드리겠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하루 만 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떳떳하게 그러나 겸손하게 부탁을 한 것이지요.
이야기를 듣고 난 그 경찰을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500원을 꺼내어 줍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내일 아침 출근길에 돌려드리겠다고 인사를 하자 그 경찰은 의외의
말을 합니다.
"안 돌려주셔도 됩니다. 그 돈은 제 돈이 아니거든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제게 그 경찰은 미소를 띤 얼굴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며칠 전에도 저 같은 사람이 와서 돈을 500원 꾸어간 일이 있었고, 그 경찰은 약간은 성가셔
하면서 500원을 빌려줬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빌려간 사람들 대부분은 돈을 돌려주지 않는데
그 사람은 다음날 돈을 되돌려 주었다는 것, 그리고 되돌려준 돈은 500원이 아니라 1,000원이었고
그 1,000원을 주면서 나중에라도 자기 같은 사람이 오면 500원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남은 500원이 제가 빌린 500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파출소를 나서면서, 지하철 표를 끊으면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지하철을 타면서 항상 떠나지
않는 것은 입가에 만들어진 미소와 이름 모를 그 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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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저는 일부러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리고 그 파출소에 찾아가서 1,000원을 돌려주고 나왔습니다.
이제 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더 생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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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입니다.
얼마 전에 회사 직원이 이 메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네가 반찬으로 먹는 연근(연뿌리)는 이 연꽃의 뿌리를 캐어 가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절 마당에 있는 연못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 떠 있는 연꽃(수련)은 이것과는 좀
다른 종류입니다.
진흙탕에서 피워올린 꽃이라서 더욱 정갈해 뵈는 게 연꽃입니다.
2001. 8. 23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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