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흐름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혹은 미각적으로 다가온다.

봄의 전령인 개나리는 시각적으로 다가오고, 가을은 잘 익은 오곡백과의 맛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여름은 청각적으로 다가온다.

귓전을 때리는 매미의 소리가 그것이다.

장마가 지고 후덥지근 더워지더라도 매미의 울음이 귀에 들리지 않으면 왠지 여름이 오지 않은 듯 하다.


오늘 아침은 매미소리에 잠을 깼다.

잠에서 깨어서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며 한동안 누워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렇게 시끄럽게 우는 매미는 기억 속에는 찾아지질 않았다.

기억이 잘 못되었는지 몰라도, 내 어릴 적 매미소리는 아침 햇살이 떠올라서 새벽에 내린 이슬을 다 말릴 즈음부터 들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때의 매미들은 요즘같이 호들갑스럽고 시끄럽게 울지 않은 듯 하다.

그렇다고 매미가 점잖게 바리톤 음성으로 울었다거나, 진양조 장단으로 울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듯 악을 쓰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매미는 수컷만 운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암컷을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행각이 대담무쌍하니, 매미도 그 유행을 따라서 새벽부터 방정맞게 우는 것 같기만 하다.

사실 매미의 울음소리는 몇 년 전에 비하여 소음의 정도가 많이 심해졌다고 한다.

그 주된 이유로는 도시의 소음이 많아지다 보니, 그 소음을 이기기 위하여 시끄러워졌다고하니 그것도 일종의 진화로 볼 수 있겠다.


매미는 굼뱅이로 땅 속에서 5년에서 길게는 수 십 년을 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긴 세월을 굼뱅이로 지나다가 날씨가 더운 어느 여름 새벽이면 땅에서 기어 나와서 나무로 기어 올라서 껍질을 벗고 등선(登仙)까지는 못하고 우화(羽化)만 한다.

그게 우리가 보는 매미다.

그리고는 일주일 정도를 살다가 죽는다.

그게 매미의 일생이다.

사람들은 매미들의 일생을 허망한 것으로 본다.

그 긴 세월을 암흑 속에서 보내고 ‘겨우’ 일주일 밖에 못산다고들 한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가 어찌 아랴!

온도 변화가 적어 아늑한 한 땅 속에서의 삶이 어쩌면 그네들의 천국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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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소리에 한 여름이 된 것을 오늘 아침에야 알았습니다.

조릿대를 삼각형으로 묶은 다음, 밤 새 지어놓은 왕거미집을 훔쳐서 만든 매미채로 매미를 잡던 기억을 떠올리며 출근한 하루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방법으로도 매미를 잡았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요?


올린 그림은 참매미입니다.

왕매미는 높은 곳에 붙어 있기 때문에 잡기 힘들었지만, 이놈은 예민해서 잡기가 까다로운 매미의 하나입니다.


2004. 7. 27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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