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효엄마가 죽었대.”
퇴근하여 넥타이를 끌르는데 아내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건넵니다.
“누가 죽었다고?”
연예인 이야기로 잘못 알아듣고 시큰둥하게 답변을 합니다.
“은효엄마 있잖아. 하안동 살 때 위 층에 살던 ....”
그제서야 큰 키에 선한 눈매를 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 한 켠에 쓸쓸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언제?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잖아?”
“우리 이사할 때 쯤 재수술을 했는데 잘못되었나봐.”
은효엄마를 처음 본 것은 4년 전 여름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옆 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는 것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날 약간 이른 시간에 퇴근하여 엘리베이트를 타고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는데, 어린 꼬마와 키가 훌쩍한 꼬마의 엄마가 뛰어오는 것을 보고 엘리베이트 문을 열고 기다렸다가 함께 탔습니다.
작은 계집아이는 타자마자 엄마의 치마 뒤로 매달리고 엄마는 13층을 눌렀습니다.
그러더니 아이 엄마가 구석에 고개 숙이고 서 있는 꼬마를 내려다보면서 웃으면서 한 마디를 했습니다.
“은효야~ 아저씨한테 인사 안하니?”
그말을 듣고 꼬마아이를 보면서 제가 먼저 인사를 했지요.
“꼬마야~ 안녕!”
꼬마는 인사를 듣고 엄마 치마 뒤로 더 숨어들어서 얼굴을 제대로 보질 못했습니다.
그것을 본 아이엄마가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우리 얘가요, 경욱이 아빠가 우리 아파트에서 제일 멋지게 생기셨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래요. 은효야 고마워. 이름이 참 예쁘네. 효가 새벽 효(曉)자 맞지요?”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저는 팬 관리를 잘 하거든요.”
그날 이후로 아주 가끔씩 은효와 은효엄마를 퇴근길에 보았고 그때마다 눈웃음으로 지나쳤습니다. 편한 복장도 그러려니와 퇴근길에 보았으니까 아마도 그녀들은 한가한 저녁시간에 인근 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겠지요.
그 모습이 퍽이나 평온하고 다정하게 보였습니다.
둘 다 웃으면 눈꼬리가 아래로 쳐지는 선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고, 편안한 원피스를 늘 입고 있어서인지 한 눈에도 ‘천상 여자다’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스러운 모습이 풍겨서 보기 좋았습니다.
특히 은효 엄마의 큰 키와 긴 목 탓인지 원피스가 잘 어울려보였습니다.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은효아빠와는 캠퍼스커플로 은효아빠가 두 살이나 어리다고 했는데, 그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도 무지 바쁜 직장인인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개월인가 지나서 늦은 퇴근을 하다가 가게를 들렀다 가는 것으로 보이는 은효엄마를 만났는데, 벙거지 모자를 하고 있었고 안색이 아주 안좋아 보였습니다.
집에 가서 물어보니까, 얼마 전에 암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서 머리카락이 빠져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도 작년 12월에 이사할 때까지 더러 마주쳤는데 머리카락도 자랐고 안색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으므로 완치가 되었나 보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녀가 그 귀여운 은효와 두 살 아래의 은효아빠를 두고 세상을 조용하게 뜬 것입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눈 것은 고작해야 몇 분 정도도 되지 않고 그저 참 좋은 이웃이고 참 좋아보이는 엄마라는 것이 그녀에 대한 생각의 끝이지만 그녀의 죽음 소식은 그냥 뉴스에서 흘러 나오는 일반적인 죽음의 소식과는 다른 슬픈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 2학년생인 자그마한 귀여운 눈매를 가진 은효의 가슴에 남겨진 진한 슬픔이, 어른이 될 때까지 엄마의 빈 자리를 쓸쓸해 할 그 많은 날들이 슬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죽으며 우리는 그 일반적인 죽음을 슬퍼하지도, 슬퍼해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세상의 모든 죽음은 개별적 죽음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개별적인 죽음은 죽는 이와 죽는이를 지켜보는 이의 회한과 고통과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효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있어서는 일반적이지도 그렇다고 개별적이지도 않은 죽음일 것입니다. 알고 지낸 사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모르는 이도 아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 속으로 사라질 은효엄마의 조용한 죽음을 애도하며 명복을 빕니다.
2004. 8. 19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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