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원래 아프지 말아야 하고, 건강이 최고의 복임은 손톱밑에 가시 하나 박혀도 실감한다.

혹여 아프더라도 좀 그럴듯한 원인으로 아파야 하고, 남들 병문안 꺼리거나 가까이 오길 꺼리는 병은 걸리지 말아야한다.

 

남들이 가까이 오길 꺼리는 병 중 대표적인 것이 피부병, 눈병, 독감, 폐병, 피부병 등 심하게 더럽거나 전염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병에 걸리면 괴로워디질지라도 진심으로 따스한 손길은 아예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아픈 원인만 해도 그렇다.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남을 구조하다가 부러지거나, 과격하고 남성적인 운동을 하다가 부러지면 좀 있어보인다. 그런데 술 취해서 무단횡단하다가 교통사고나서 다치거나, 계단에서 딴 짓하다가 헛발 짚어 부러지거나, 자전거 타고 딴 눈 팔다가 전봇대랑 부딪혀서 이가 부러지면 남 부끄러워 말도 못한다.

그리고 속이 탈나도 격무에 시달리면서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면 좀 뽀대나는데, 먹는 거 잘 못 먹어서 탈이 나면 그것도 참 없어 보인다.

그저 보약이라도 되는 양 산에가서 독버섯 따먹고 식중독 걸리거나, 상한 음식먹고 탈나거나, 건강식이랍시고 대놓고 먹다가 탈나면 인간이 처량하고 한심해보인다.

 

오늘 병원에 갔다.

그런데 참으로 한심하고 불쌍하고 없어보이고 등신스러운게,

몸에 탈이 난 원인도 쪽팔리고, 그 결과도 남들이 접근하길 꺼려하고 좀 까탈스런 인간들은 눈 마주치기 조차 싫어하는 전염성이 있는 탈이 난 것이다.

어제 점심에 옻닭을 먹었는데, 그게 탈이나서 새벽녁부터 온 몸이 근질거리면서 붇고 열이 나더니 결국 옻이 옮았던 것이다.

대저, "옮는다"란 말이 얼마나 지저분한 말인가.

옮는 것은 대표는 일단 옴이다.

그리고 이, 비듬, 눈병, 감기, 부스럼, 옻..........

하나같이 지저분하고 추접스럽기 짝이 없다.

 

결론적으로  "나이 마흔 중반 든 놈이 먹는 거 하나 컨트롤 하지 못해서, 전염성이 있는 병에 옮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상상만으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심한 쪽팔림과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자괴감과 심각한 수치심에서 기인한 자살충동을 동시다발로 느끼고 창 밖을 잠시 내다 본다.

(4층이라서 다리 부러질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해서 병원에 갔다.

처음에 나갈 때에는 "피부과"에 가려고 나갔는데, 가다보니 "내과"가 보인다.

이 시점에서 또 갈등을 한번 때려야만 했다.

가. 피부가 가렵고 부은 것이니 피부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나. 결과야 피부에 나타났지만, 그 원인이 속에 먹은 음식이니 내과가 맞지 않을까?

 

결론은 쉽게 내었다.

피부과는 길 건너에 있어서 길 안건너도 되는 내과에 갔다.

접수하고 보니 먼저 온 손님(모두 노인이었다)이 4분인데, 의사양반이 하도 진료를 오래 보는 바람에 무려 40분이나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불안감도 커지는 법, 기껏 기다렸다가 들어갔는데, "피부과에 가지 왜 왔니?"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어찌되었건 시간은 흘러서 진료를 했는데...의사양반이 '옻'이란 말을 듣더니 벗어놓은 고무장갑을 끼고 진료를 보기 시작하더라.

이러 저리 청진기대고 기왕력을 묻고 하더만 옻이 심한 부위를 '보고'(장갑낀 손으로도 만지지 않더라), 주사 한 방과 이틀치 처방을 내리더라.

나와서 좀 기다리니 간호사인지 조무사인지 와서 들어오라더니 창고 비스무리 한 곳에 들어가서 바지 내려란다. 주사실에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는 양해인지 핑게인지 대면서....

참, 주사실에 가면 참 난감한 일이 한가지 있는데, 그넘의 바지를 어디까지 내릴지.............

하여간 허벅지까지 바지를 내리고 엉거주춤 바지춤을 잡고 안나오는 자세를 그나마 좀 내 보려고 짝다리 짚고 서 있으려니까, 주사기를 든 아가씨가 오더니 벨트라인 바로 아래에 주사를 푹 놓고는 거즈주면서 문지르라고 한다.

순간 쪽 팔린다....허벅지까지 내려가 있는  바지를 한참동안 올려야 할 때..특히 그렇다.

참, 그녀도 내 몸에 손을 대지 않고 주사를 놓더라.

 

주사맞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니 금새 이틀치 약을 제조해주는데, 아주 작은 알약 1.5개가 한번에 먹는 약이다.

또 궁금증을 못이기고 "이거 항 히스타민제 입니까?" 물어봤다.

그러니까 그 약사가 내 얼굴을 힐끗보더니 마지못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 약사는 속으로 "더러운 병 걸린 놈이 별 거 다 궁금해하네..."하는 것이 확실해보였다.)

 

이게 오늘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근질거리는 것을 꾸욱 참고 일을 하는데.......남들은 더럽게만 쳐다보고 있다.

그 흔한 커피 한 잔 같이 하잔 소리도 없이 말이다.

지들도 어제 같이 먹어놓고서는......

 

2008.  4.  17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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