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美食家),

미국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먹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사전에 되어 있다.

식탐(食貪),

음식을 탐(貪)내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쉬는 날 TV를 볼랍시면, 하루 종일 요리방송을 봐야하고, 전국에 맛난 음식점이 등장하고, 

길거리로 가 보면 대부분의 음식점이 TV에 출연한 것처럼 보인다.

먹는 것이 생명과 관계되는 것이라서 중요하긴 중요한가 보다.


한 때는 맛난 것을 유독 탐하는 사람들을 골빈 사람과 동일시한 적도 있었고,

먹기 위하여 장거리로 이동하는 사람도 그 비슷한 부류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 호들갑스럽지는 않아도 철따라 생각나는 음식이 더러 있고, 그것을 먹기 위하여 주말에 간혹 차로 이동하고 있으니, 나 또한 골빈 놈이 되지 않으려면 미식가나 식탐이 사람의 기호의 일종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다.


사람의 음식기호는 계절, 일기, 하루중의 시간에 따라 다 틀리게 나타난다.

눈 오면 찐 고구마에 동치미가 어울리고, 비가 오면 부침개나, 칼국수 또는 수제비가 생각난다.

돼지고기는 저녁이 잘 어울리고, 된장찌개는 아침이 제 격이다.



식탐이나 미식가는 아니지만, 계절음식으로 해마다 꼭 먹고 싶은 음식이 몇 있는데, 그 중 으뜸이 쑥국이다.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각시를 졸라서 쑥국은 꼭 먹고 겨울을 넘긴다.

지방에 따라서는 쇠고기도 넣고 콩가루를 사용하기도 한다지만, 경상도식은 좀 더 단순하다.

된장을 엷게 푼 물에 쌀가루 조금과 쑥을 넣어 끓이다가 들깨가루를 좀 넣고 끓인 다음, 먹기 전에 대파를 얇게 썰어 넣으면 끝이다.

바닷가 지방에는 바지락을 넣어서 끓이는데 경상도 내륙에는 엄두를 못내지만, 마산댁을 각시로 맞이하면서 바지락 쑥국을 먹는다.

초봄에 나는 나물은 대부분이 힘든 겨울을 보내느라 추위에 얼고 바람에 지친 피곤한 모습이다. 달래가 그렇고 냉이가 그렇다. 한 겨울을 보내면서 바람에 살이 깎이고, 추위에 잎이 녹아내려서 겨우 그 모양만 존재하며, 맛은 농축되어 강하면서 질기다.

그에 비하여 쑥은 초봄에 가장 먼저 싹을 틔우면서 통통하니 살이 올라 있어 부드럽다.

그야말로 새해에 가장 먼저 새로 돋아나는 나물이다.

땅의 정기가 고스란히 베어 있는 쑥과, 오래 발효되어 깊은 맛을 지닌 된장과, 추운 겨울을 지낸 바지락의 싱그러움이 어우러진 쑥국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뜨끈한 쑥국을 입 안 가득 머금으면 따스하고 포근한 봄 햇살이 온몸에 퍼지는 듯 하다.

개운한 향기와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쑥과 푸근하면서 깊은 된장의 맛, 그리고 바다처럼 시원하면서도 탁 트이는 개운한 바지락 맛이 한꺼번에 입안으로 스며들면 온 몸의 신경이 미각신경 하나로만 구성된 듯 온전하게 몰입하는 맛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쑥국의 첫 술은 자못 경건하면서 조신하게 눈을 지그시 감고 음미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쑥국을 먹어보면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하여 먹은 것이 왜 "쑥"이었는지 알 듯도 하다.

그렇게 해마다 봄이 되면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쑥국을 먹는다.


2009. 2. 11 맑은날


두 녀석은 해마다 봄만 되면 쑥국으로 애를 먹습니다.

벌써 10년 넘게 먹여 보지만, 아직도 지들 입에 맞지 않나 봅니다.

억지로 한 그릇씩 먹이곤 하는데 녀석들은 사약이라도 되듯이 힘겨워합니다.

그래도 녀석들에게 그 깊은 흙의 맛과 봄의 향을 꼭 맛들일 계획입니다.

쑥국을 느낄 입을 가진다는 것은 추운 겨울동안 멋진 기다림의 하나가 될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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