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뉴스를 보면 더러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게 된다.

어떤 사안에 대한 리포터의 질문에 지나가던 시민은 답변을 하는데 그 끝은 항상 동일하다.

 

"~~인 거 같아요."

 

회사내 프리젠테이션 경연이 있는데 우리부서의 참가직원을 불러서 사전 연습을 시켰다.

15분 발표하는데, 그 직원은 발표하면서 '~인 거 같습니다.'를 서른번 이상 반복했다.

연습이 끝나고 평을 하면서 자신의 소신이나 생각 또는 객관적인 사실을 발표하는 자리인데 '~같다'란 표현은 맞지 않고, 강의하는 사람의 자신감이 결여된 것으로 보여지므로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같다'는 형용사로서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나타낸다.

① 체언이나 의존 명사 ‘것’의 뒤에 쓰여,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

② 어떤 대상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나 불완전 어근 뒤에 붙어, ‘그 대상의 속성에 비할 만함’, '동일함'의 뜻을 더하여 형용사를 만드는 말

 

두번째의 의미로 사용되는 '같다'는 대부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고향이 같은, 생각같아서는~ 등의 쓰임새가 그것이다.

 

문제는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의 의미로 사용되는 '같다'가 남발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리포터가 구름한 점 없는 맑은 가을에 공원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오늘 날씨가 어떤가요?'라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은 거 같아요. 구름 한 점 없이 말고 바람도 상쾌한 거 같아요."

"오늘 기분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

"산책하기 좋은 날씨인 거 같아요."

 

내일 날씨도 아니고 지금 현재의 날씨를 묻는 질문에 '같아요'라고 추측을 왜 하나?

그 사람이 눈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기분 좋은 문제도 그렇다. 지 기분도 지가 파악 못하나?

 

또 음식을 먹게 하고 평을 물어보면 출연자들은 "맛있는 거 같아요."라고 한다.

a~e~ siba, 니 혀로 니가 먹었잖아.

 

 

가끔 이런 류의 지적이 나오곤 하는데 그럼에도 각 방송에는 가감없이 또는 적절한 제어없이 그대로 방송을 타곤 한다.

그럼 왜 이런 표현이 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을까?

이 부분에 대한 분석이나 고찰은 아직까지 체계적인 접근이 없는 것 같다. (바로 이럴 때 '같다'를 사용하는 거여~)

 

언어는 사회를 반영한다.

우리의 현재 언어는 일제시대, 해방, 한국전쟁,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 그리고 인터넷과 sns 문화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상에서 이러한 언어사용습관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같다'라는 추측이나 짐작의 표현에는 숨겨진 말이 있다.

'아님 말고',

'따지지 마',

이처럼 화자는 객관적 근거 없이 다만 추측을 한 것이고, 자신의 말에 책이 잡힐 경우 책임을 지지 않고 빠져 나가겠다는 의도가 숨겨진 말이 바로 '~같다'란 표현이다.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과 이데올로기의 극한대결의 시대에서 우리는 말 조심을 해야 했다.

쥐가 듣고 옮기든, 새가 듣고서 고자질하든 그 말이 문제가 되면 생존의 근본이 흔들리는 시대를 건너왔다.

보안법이라는 아직도 서슬이 퍼렇게 살아있는 이 나라에서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주어 표현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다.

'말 많으면 빨갱이'가 되는 세상에 가급적 말을 아껴야 했고, 말을 아끼는 것은 본능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말을 할 때에는 끝에 '~같아요.'를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박정희와 전두환이 불법적인 쿠데타를 한 뒤로는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방귀 뀐 두 놈은 늘 성이 나 있었고, 몇 명만 모이면 자신을 욕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불 꺼진 창'이란 제목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건 너'란 말이 건방지게 들린다고 방송금지를 내린 그들이 지배하는 이 나라에서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이 어느정도 자유로워 졌을 때,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었고, sns가 일반화 되었다.

이제 두려운 존재는 정부나 공권력이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전 국민이다.

개똥녀니 된장녀니 신상털기....무서운 세상이다.

얼마 전만 해도 연세대 교수 한 분이 김연아 교생실습에 대한 언급을 했다가 온 국가가 난리를 겪지 않았던가.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독재자의 딸에 대하여 적절치 못한 표현 한 마디 했다가 초토화되지 않았던가.

 

결국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원인이 되어 이 나라 국민은 단지 모든 일을 추측만 할 뿐 자신의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O같은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O같은 세상'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쫄지마, 씨바~"

 

                                                                                                                                                                 2012. 8. 17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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