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한다.
이 말을 처음 들을 때는 참 묘하게 들렸다.
유소년기 때라서 정확하진 않지만 국민학교 3-4학년 다닐 즈음이었을 거다.
그 나이부터 부지깽이도 일을 거든다는 모내기철에는 부지깽이가 아닌 나는 당연하게 무논에 일 도와주러 나섰다.
모판에서 쪄낸 못단 (볍씨를 모판에 파종했다가 한 뼘 정도 자라면 손으로 뽑아서-쪄서- 1~2kg 크기로 묶은 단)을 무논(모내기를 위하여 논을 갈아엎고 물을 가두고 써래질하여 모내기 준비가 된 물이 든 논)골고루 옮겨 놓는 일이나 써래질하는 아버지 따라다니며 흙이 쏠린 곳을 고르는 일은 물론이며 못줄 넘기기를 하거나 직접 모내기도 하였다.
모야 모야 노랑모야.
언제커서 열매열래.
이달 크고 저달 커서
구시월에 열매맺지.
흥얼거리듯 적당한 속도의 리듬을 가져서 다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늘어지지 않을 속도의 모내기 노래도 귓가로 들었다.
중참을 먹으며, 아픈 허리 두들기며, 모내기를 하다보면 더디지만 언젠가는 등 뒤에 마지막 논두렁이 있었고, 어둑해진 해거름을 따라 개구리 울음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다음 날 학교가는 길에 본 갓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가녀리고 연두색 모들이 물에 잠길듯이 바람에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열흘정도 지나면 연두빛 모들은 서서히 초록빛을 짙어지고 그 즈음부터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 즈음이 모들이 새로 옮겨진 논에 하얀 새뿌리가 나서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어른들은 그것을 보면서 "모가 사람했다"라고 말하고, 그때부터 논에 들어가서 김매기를 하거나 비료도 주기 시작하였다. 어떤 경우는 물을 살짝 빼주어서 뿌리가 좀 더 깊이 내리도록 자극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했다"는 말의 의미를 유추하면 '죽지 않고 살아났다'가 된다.
우리말의 기원어로 알려진 세소토어에서 '살다'를 '살라-sala'라고 한단다. 그리고 우리말에서 동사의 명사꼴은 [ -ㅁ ]이다.
결국 '사람(人)'이나 '삶'이란 말은 '살다'에서 나온 말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고운 단어도 '살다'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맞을 터이다.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삶의 본질이니까...
벼가 사람하는 이 시기...
당신은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