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나이
어릴 적 국민학교 2학년 다닐 때 부산 외가에 처음으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살던 곳에는 버스길이 없어서 어머니 손을 잡고 고개를 하나 넘어서야 청도역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버스를 타던 날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차를 본 것은 뒷산에 산판(목재를 벌목하는 일을 말합니다)이 벌어졌을 때, 미국 GM사에서 만든 트럭인 GMC(이 차를 말대가리차 또는 '대무시'라고 불렀는데, 대무시는 지엠시가 와전 된 것으로 보입니다)가 전부였으며, 푸른색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트럭을 따라가면서 기름타는 매연냄새를 서로 맡으려고 앞을 다투어 뛰던 기억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넘어 버스 정류장 표지도 없는 자갈길에서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어머니는 제게 누누이 일렀습니다.
"맑은날아! 안내양이 물으면 아직 학교 안다니고 일곱 살이라고 이야기 해야 된데이~"
처음타는 버스, 게다가 거짓말을 각오하고 타야되기에 저는 잔뜩 긴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저는 국민학교 2학년치고는 키가 큰 편이었거든요.
버스에 오르자마자 안내양은 어머니께 저의 차비를 요구했고, 그러자 어머니는 태연하게 "야는 아직 학교에 안 댕기는데예?"하셨습니다.
다행히 안내양은 못 믿는 눈치로 저를 몇 번 훑어보더니 다행히 별 말이 없었습니다.
그 버스를 타고 청도역까지 30분 정도의 걸리는 시간 내내 저는 흥분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 타 보는 버스의 속도감, 비포장도로에서 버스가 요동을 칠 때 전해오던 메스꺼움,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가로수들, 그리고 버스를 따라 길게 꼬리를 물고 따라오던 하얀 먼지들.......
2년 전 봄, 서울랜드에 나들이 갔을 때입니다.
그때 윤석이는 일곱 살, 파랑새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서울랜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냅니다.
팻말을 훑어보니 7살부터 입장료를 내도록 안내되어 있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윤석이에게 주문을 합니다.
"윤석아~ 저기 표 받는 이모가 너보고 몇 살이냐고 물으면 여섯 살이라고 해야 한다."
"네~ 아빠."
눈치빠른 윤석이는 안내문을 읽어보고 난 뒤 제 말 뜻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표를 두 장 내자, 표받는 아가씨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상냥하게 윤석이에게 묻습니다.
안내양 : "꼬마야~ 몇 살이니?"
윤석이 : (손가락을 여섯 개 펴 보이면서) "여섯 살이요."
맑은날 : (속으로) '대견한 녀석!!'
안내양 : (겉으로만 웃으면서) "얘가 참 크네요?"
서울랜드에서 범퍼카도 타고, 회전목마도 타면서 놀았습니다.
그러다 윤석이가 바이킹을 타고 싶어했습니다.
바이킹은 키가 110이상이고, 여덟 살 이상만 이용할 수 있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일단 표를 두 장 끊고 윤석이와 줄을 섭니다.
맑은날 : "윤석아~ 저기 표 받는 형아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여덟살이라고 해야 탈 수 있어."
윤석이 : "아빠! 저도 알아요."
그래서 바이킹도 탔습니다.
아마도 일곱 살짜리가 서울랜드 바이킹을 타는 일은 흔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릴 때 윤석이 표정을 보니까, 하얗게 질려 있었으나, 재미있다고만 합니다.
그렇게 놀다가 해질 무렵 서울랜드를 나왔습니다.
윤석이는 나올 때에도 나이를 물어 볼 것을 염려해서인지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서울랜드를 벗어나자 윤석이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어봅니다.
윤석이 : "아빠~ 나 집에 가면 몇 살이야?"
맑은날 : "......................"
지난 주에 스타워즈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광명시에 있는 오래된 극장이라서 좌석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날도 뻔뻔스럽게 표를 두 장 밖에 안 끊었습니다.
토요일 이른 시간이라서 사람들이 별로 안보입니다.
아이를 두 명이나 데리고 표 두 장을 주는 우리를 보고 검표원 아저씨는 기가 믹힌다는 듯이 한말씀을 하십니다.
검표원 : "원래 아이들 보는 영화에 너무 하신거 아닙니까?"
아내 : "자기야~ 아이들 데리고 먼저 들어가."
맑은날 : (두 놈 손을 잡고 끌면서) "응"
좀 있다 마눌이 웃으면서 옵니다.
3,000원을 아저씨 손에 쥐어주고 오는 길이라고 합니다.
시집왔을 때 감귤 오천원어치 사면서 하나 더 달란 소리도 못했던 아내도 많이 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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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입니다.
극장에 갈 때 심심풀이로 먹는 게 오징어와 땅콩이지요.
그런데 이름이 왜 땅콩인지 안 궁금해요?
땅콩도 다른 콩과 마찬가지로 콩과 식물입니다.
다른 콩과식물은 줄기에 콩이 달려서 그 꼬투리를 따서 수확하는데 땅콩은 땅을 파고 수확을 합니다.
'꽃은 위에서 피는데 열매는 땅속에 있다?'
좀 이상하지요.
땅콩이란 놈은 줄기에서 꽃을 피워서 수정을 합니다.
수정이 되면 꽃자루가 아래로 빠른 속도로 자라서 땅을 파고 들어간 다음, 땅속에서 열매가 굵어집니다.
그래서 가을 무렵 땅콩포기를 보면, 줄기마다 땅으로 파고 들어간 열매자루가 빼곡히 보입니다
결국 땅콩은 땅에서 수확하는 것이지만, 줄기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린다고 보아야 합니다.
주말농장에 아이들 보여 보여 주려고 땅콩을 다섯포기를 심었는데, 잘 자라고 있답니다.
2002. 7. 29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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