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이들과 근린공원에 갔다.
여름날씨 같지 않은 시원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축구 공 하나 들고, 윤석이는 자전거를 타고, 경욱이는 윤석이가 물려준 퀵보드를 밀고 갔다.
경욱이가 타는 퀵보드는 신문을 구독하면 서비스로 준다고 해서 D일보에서 J일보로 바꾸면서 얻은 것인데 싼 게 비지떡이라서 시원찮다.
그래도 경욱이는 자기가 쓰는 물건이 다 시원찮은 윤석이가 물려준 '물림물건'이어서인지 불평 없이 즐겨탄다.

공원에서 우리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이 함께 축구 하자고 해서 혼자 골키퍼를 하고 아이들에게 골인을 하라고 시켰다.
같이 노는 아이들 중 윤석이보다 한 살 어린 8살 먹은 꼬마 하나는 유난히 공을 잘 찼다.
윤석이는 얼마 전까지 축구교실을 다녔는데, 애비 닮아서인지 영 시.원 찮.다.
윤석이는 그 꼬마와 같이 가장 많은 네 골을 넣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경욱이가 공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고 얼굴을 감싸쥐고 울었다.
보니 코피가 나고 있었다.
공을 찬 아이가 더 놀라서 어쩔줄을 몰라 했다.
그 아이부터 달래주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윤석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아빠~ 내가 골을 넣게 아빠가 봐 준 거지?"

"음~ 그래 조금 봐줬지."

"몇 번째 골을 봐 준거야?"

"아마 세 번째 골 같은데?"

"............."

'짜식~ 눈치는 빨라서.....''



집에 와서 아이들을 씻기는데 두 놈은 목욕을 하겠다고 우기고, 빨리 샤워하고 공부해야된다고 했는데, 늘 그렇듯이 마눌이 이겨서 두 놈을 샤워시켰다.


아이들을 씻기면서 늘 그렇듯이 참 빨리 큰다고 느낀다.
소파에서 자는 윤석이를 방으로 안아다 눕히면서 몸무게를 인식한 것은 오래지만, 요즘은 경욱이도 몸무게를 느낀다.
아이들이 빨리 크는 건지, 아니면 내가 힘이 약해지는 건지.........
지난 달 천안으로 발령이 나서 혼자 살게 되면서 아이들을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만 보게 되었다.
물론 수원에 있을 때에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주말에 한번이었지만, 늦게 퇴근해서 자는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보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못하니까 좀 더 애틋해지고 아이들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
오래가 아니라면 가까운 사이라도 좀 떨어져 살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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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 오니 능소화가 유달리 많이 보입니다.
햇살을 받고 핀 능소화가 고운 담장이 자주 보입니다.
10년 전 부천에 살 때 처음 보고 이름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던 꽃입니다.



능소화 편지

등잔불 켜지듯이 능소화는 피고
꽃지는 그늘에서
꽃 빛깔이 고와서 울던 친구는 가고 없다.
우기지 말 것을,
싸웠어도 내가 먼저 말을 걸 것을
여름이 익어갈수록 후회가 깊어
장마 빗소리는 능소화 울타리 아래
연기처럼 자욱하다.
텃밭의 상추 아욱 녹아 버리고
떨어진 꽃 빛깔도 희미해지겠구나.
탈없이 살고 있는지 몰라,
여름 그늘 울울한데
능소화 필 때마다 어김없이 그는 오고
흘러가면 그뿐 돌아오지 않는단 말,
강물이야 그러겠지,
나는 믿지 않는다.

2002. 7. 18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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