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김후란
때아닌 이상기온으로
폭설이 내려
사람도 차도 집에 갇혔다
바쁘게 나뉘었던 가족이
오랫만에 만난 친구처럼
가까이 다가앉는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서로를 지그시 마주 보며
은은히 감도는 장미꽃 향기의
그 순수를 맡았다
실로 정겨운 동질감.
눈이 많이도 내렸습니다.
평소보다 다소 일찍 일어난 일요일 아침, 베란다 창을 여는 순간 온 세상은 순백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중충하고 침침한 회색도시가 일순간에 하얀 설국으로 변한다는 게 마법같이 신기하다고 느끼면서, 가스렌지에 커피물을 올려 놓고 라디오를 켰습니다.
커피 두잔을 준비해서 한 잔에다 뜨거운 물로 커피를 녹이고 나머지 한 잔은 아내의 몫으로 남겨 놓고 눈 소식과 음악을 들으며 신문을 펼치고 아침의 한적함과 여유를 잠시 부립니다.
커피를 마신 다음 간단한 외투를 걸치고 현관을 나가서 복도에 쌓인 눈을 치웁니다.
1204호 할아버지가 아침 일찍 외출을 나가셨나 봅니다.
깐깐하고 꼼꼼한 선비풍의 할아버지신데, 여유있고 푸근한 할머니와 두분이서 살고 계시며 가끔 저랑 장기를 두는데 제가 번번이 지곤 합니다.
복도에 수북히 쌓인 눈 위로 눈은 계속 날아들고 있었습니다,
빗자루와 부삽으로 눈을 모두 치운 다음 다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며칠 전에 여덟살이 된 큰아들 윤석이가 나와서 나른한 표정으로 안깁니다.
"잘잤냐 ?"
"네 ~"
"눈이 많이 왔는걸 !!"
"정말??"
베란다로 뛰쳐나가서 밖을 내다보고는 탄성을 지릅니다.
순간, 어린 시절 한 겨울 새벽에 마당에서 아버님께서 "빨리 일어나라~ 눈 많이왔다." 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애써 부여잡고 있던 멀어지는 잠을 단숨에 놓아버리고는 방문을 활칵 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연이어 아내가 나오고 조금 더 있다가 이제 여섯 살이 된 둘째 경욱이도 쪼르르 달려나옵니다.
아침의 여유로움과 고요는 한순간에 날아가고 북적대는 일요일이 시작됩니다.
눈사람 만들러 가자고 조르는 두놈에게 아침먹고 가자고 약속을 합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밖에 나갈 채비를 합니다.
밖에 나갈 채비를 할 때면 아내만 서두르고 나나 두놈은 게으르기 그지 없습니다.
양치질 하는 동안 갑자기 둘째 놈이 큰소리를 지르며 울고, 연이어 큰아들이 아내에게 항의하는 소동이 들립니다.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살펴보니, 작은 놈이 아내에게 아빠는 어딨냐고 물으니까, 아마도 아내가 '니들이 꾸물대서 밖에 먼저 가셨다'고 말했나봅니다.
작은 놈은 억울함에 눈물을 쏟으면서, "엄마가 좀 챙겨줘야지~"하면서 항의를 하다 고개 돌려 나를 보고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안도감에 비시시 웃어버립니다.
작은 소동이 있은 다음 부산스레 챙겨 입고는 눈구경을 나갑니다.
나가서 눈싸움을 한바탕하고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눈사람을 다 만들고 눈사람의 몸통에 우산을 세워서 우산 쓴 눈사람을 만드니 윤석이가 무지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기 물건을 유독 챙기는 경욱이는 그걸 그냥 보고 있지 못합니다.
혹시나 집에 갈 때 잊어먹을까 염려가 되는지 우산을 자꾸 빼내고 윤석이는 그걸 다시 꽂느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납니다.
경욱이는 유독 자기 주변의 것을 챙깁니다.
가족이 같이 갈 때도 느려터진 형이 나와 아내에게 한참이나 뒤떨어져서 걸어오면 경욱이는 우리와 윤석이의 중간쯤에 서서 "아빠! 천천히 가.. 형! 빨리 좀 와~"하면서 챙기다 거리가 좀 더 멀어지면 중간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곤 하지요.
얼마 전에는 경욱이 생일에 유치원에서 한복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들려 보냈답니다.
그날 유치원에서 생일잔치를 하고 "정글인"이란 곳에 놀러를 갔는데, 경욱이는 5분마다 선생님께 와서 자기 한복이 잘 있는지 체크를 하다가 결국에는 "선생님 한복 제가 가지고 있으면 안되요?"라고 심각하게 건의를 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눈세상에서 놀다가 뒹굴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애들이랑 컴퓨터 게임을 하고 동화를 읽고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으례 그러듯이 두놈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세 번, 칼싸움을 하면서 두 번,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한번을 싸우고 나서야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내린 폭설은 가족의 무릎을 더 가깝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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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나무 열매입니다.
빨간 열매에 배꼽부분은 비어 있고 까만 씨앗이 들여다 보입니다.
손으로 열매를 만지면 애기살결같이 말랑말랑한데, 과육을 먹으면 달작지근하지만 먹어도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앵두같이 붉은 것은 주목나무 열매~~~"라는 박신양이 나오는 광고 카피 아시죠?
그 광고가 생각나서 올려보았습니다,
주목은 고산지대에 살며 수질이 단단하고 장수하는 나무입니다.
소백산이나 지리산의 고사목은 모두 주목나무입니다.
그래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산다고 하지요.
침엽 상록수이고 요즘은 정원수로도 많이 보입니다.
20001. 1. 8 맑은날
새로 오신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시고, 칼럼지기가 좀 게을러 글이 늦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제 멜로 보내주시면 보내신 분의 닉네임으로 제 칼럼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칼럼을 같이 만들어 가자는 뜻에서, 그리고 혼자 힘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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