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아이들이 옛날 이야기 해 달라면 고민이 여간 아닙니다.
옛날 이야기책을 사서 따로 읽을 시간도 없거니와 이제 와서 책장 넘어가는 게 아까운 그런 재미도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제가 우리 아이들만 했을 때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를 써먹습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줄거리만 알면 대충 꿰어 맞추면 되는 아주 길고도 긴 이야기이고, 몇날 몇일을 해도 끝이 없는 그런 이야기가 두 편이나 있거든요.
아라비안 나이트냐구요?
천만에요... 그건 천일밖에 못하잖아요.
저번에 무인카메라 이야기 할 때 그 이야기 끝나고 또 해달라고 해서 아주 긴 이야기를 해준다고 하니 좋아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옛날에....
사실 이 이야기는 옛날이 아니고 지금이거나 미래여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옛날에....."라고 시작해야 맛이 나고 얘들도 좋아합니다.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중국이란 나라에 가면 무한봉이라는 아주 높은 산이 있었단다.'
큰 놈이 또 끼어듭니다.
"아빠! 에레베스트보다 높아?"
"임마! 에레베스트가 아니라 에베레스트야.... 차라리 엘리베이트라고 하지 그러냐??. 무한봉은 그것보다도 억만 배나 훨씬 높지..."
"그럼 '무한대'야?"
"무한대보다 쬐금 작아...-_-;;" (어디서 또 무한대란 말은 주워 들었나 봅니다)
'그 무한봉 아래에 수박장수가 있었는데, 그 수박장수는 소문난 효자였단다.
그런데 어느날 홀어머니가 깊은 병에 걸렸단다.
그래서 그 수박장수가 몇 날 동안 낮게 해 달라고 무한봉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니까 하루는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서.."네가 가진 수박 중 가장 큰 것을 골라서 그것을 무한봉 꼭대기로 가지고 오면 약을 주겠다"고 한거야.
그래서 다음날 수박장수는 가장 굵고 좋은 수박 한 통을 짊어지고 무한봉을 올랐단다.
그 높은 무한봉을 몇 날 며칠동안을 잠도 자지 않고 고생해서 올랐단다.
그렇게 몇 달을 고생해서 겨우 꼭대기 가까이에 올라간거야.
꼭대기까지 다가가서 마음이 조급해진 수박장수가 서두르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버렸지.
그러자 등에 메고 있는 수박이 떼구르르 하고 굴러버린거지.'
이제부터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데굴데굴... 데굴데굴.... 데굴데굴..............................데굴데굴'
듣다 못한 둘째 놈이 참견합니다.
"아빠! 그래서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되긴........ 수박이 자꾸자꾸 아래로 굴러 내려오는거지... 데굴데굴....데굴데굴....데에구울 데에구울"
큰 놈이 또 묻습니다.
"아빠! '데에구울 데에구울'은 또 뭐야?"
"응~ 그건.... 경사가 별로 가파르지 않은 곳에서 천천히 굴러내려오는거야. 데에구울 데에구우울"
"아이 참! 언제까지 굴러내려오는데?"
"정확히는 다 굴러 내려와봐야 알겠지만 네가 스무살이나 되어야 다 굴러내려올 걸.....데굴데굴"
"이제 얼마나 내려왔어?"
"아직도 아주 조금 밖에 못 내려왔지...아빠가 첨에 그랬지 아주 높고 높은 산이라고...데굴데굴"
아이들이 잠잠합니다.
아마도 수박이 높을 산을 굴러 내려오는 걸 상상하나 봅니다.
아이들은 그런 상상을 하다가, 수박따라 산을 내려오다가 사르르 잠이 듭니다.
어제도 이야기 해달라고 하길래 계속 '데굴데굴'만 하다가 잠 재웠습니다.
어제 밤까지 내려온 거리는 무한봉의 만분의 일 밖에 안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내일도 또 써먹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아직 안 해준 이런 이야기가 또 하나 있지요.
'멀고도 먼 옛날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살지 않을 때 였단다.
어느날 호랑이 몇마리가 나타나서 짐승들을 잡아먹기 시작하자, 짐승들은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였단다.
그래서 모두들 압록강을 건너서 피난을 하기로 했지.
압록강가에 모인 전국의 짐승들은 차례대로 강에 뛰어 들었단다.
"풍덩...........풍덩...........풍덩.............."
"풍덩..........풍덩............퐁당...........첨벙.......푸웅더엉............."
조선 팔도에서 다 모였으니 그 짐승이 얼마나 많겠니....풍덩........풍덩
.......................
한여름에 멍석을 깔아 누운 자리에서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별을 세며..그 별빛에 눈이 부셔서 스르르 눈을 감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도 그 종류로 보면 엄청나게 많지요.
나무껍질이 회백색인 것은 백송(白松), 잎이 황금색인 것이 금송(金松), 나무 줄기의 아랫부분에 여러 개의 줄기가 모여 나는 반송(盤松), 잎에 흰색이나 황금색 줄이 있으면 은송(銀松), 바다에서 자라는 해송(海松), 건축자재로 이름 높은 금강소나무(춘양목) 등이 있습니다.
제 고향 청도에 가면 청도군 동산면 동창이란 동네가 있는데 그 동네 입구에는 소나무 두그루가 멋지게 서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나란히 마주 본 두 소나무중 한그루는 능수버들처럼 가지가 축 늘어져 있지요. 그래서 국민학교 다닐 적에 우리는 처진 소나무를 암컷이라 부르고 그냥 잘 빠진 소나무를 수컷이라 부르곤 했답니다.
어린 나이에도 남자답다는 여자 답다는 통속적인 고정관념이 있었나 봅니다.
얼마 전에 고향가는 길에 그 소나무가 있던 곳을 지났는데, 수컷은 없어지고 암컷만 초라하니 남아 있어 힘들어 보였답니다.
고향의 처진 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의 소나무는 도래솔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동네 어귀나 동네 인근의 무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멋진 모습입니다.
2000. 10. 11 맑은날 ksg4u@hanmail.net

'두 아들의 아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석이(1) 감, 고욤> (0) | 2001.02.17 |
---|---|
옛날이야기(1) 구절초> (0) | 2001.02.17 |
살밥이 아니라 쌀밥..(1) 메꽃> (0) | 2001.02.17 |
살밥이 아니라 쌀밥..(2) 탱자> (0) | 2001.02.17 |
떨어져서 바라보기 구상나무> (0) | 2001.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