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슈퍼
우리동네에는 정아슈퍼라는 작은 가게가 있습니다.
말이 슈퍼이지, 그 규모는 작다는 점에서 슈퍼급입니다.
가격도 인근 마트보다 약간은 비싼 소매점이지요
제가 지금 사는 곳에 4년 전에 이사를 올 때부터 가깝다는 이유로 이용하였는데, 작년
초겨울에 그 가게를 하시던 아저씨는 서울에 있는 큰 슈퍼를 사서 옮겼습니다.
결국 그 미니슈퍼는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는 것이지요.
항상 웃는 아줌마와 아저씨, 그리고 착해 보이는 큰아들...
과일도 팔았는데 그 가게에서 과일을 사면 맛없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가끔 좋지 못한 과일이 들어오면 곧바로 물건을 회수하거나 반품을 다 받았고, 외상도
웃으면서 주었지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그 가게의 웃음에 이끌려 그 가게를 이용한 거지요.
3년 전의 일입니다.
그 아저씨가 어떤 법률적인 문제로 손해를 본 일이 있었나 봅니다.
작은 손해라면 그냥 넘어 갈 그런 분이었는데, 손해 본 금액이 600만원 가량은 되었나 봅니다.
어떻게 아는 사람을 통해서 제게 도움을 청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 사정을 알아보고 전화 한 통화로 깔끔한 마무리를 해주었지요.
(저 알고보면 능력있는 넘인가 봅니다.^^)
그때부터 전 정아슈퍼에 가기만 하면 사기를 당하였습니다.
나 : 아저씨 저 수박 얼마지요?
아저씨 : 6,000원입니다.
나 : 에이~. 아닌 거 같은데요?
아저씨 : 진짭니다.
나 : 에이~. 자꾸 그러시면 나 안 살랍니다. 진짜 얼마예요?
아저씨 : 8,000원인데 7,000원에 가져가세요.
그러면 저는 8,000원을 드리고 돌아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결국은 2,000원을 사기당한 것임을 알게됩니다.
그 수박은 10,000원 짜리였던 것이지요.
그 외에도 그 가게를 갈 때 윤석나 경욱이를 데리고 갖다가 계산을 치르고 돌아오다
뒤돌아보면 윤석이나 경욱이는 계산하지 않은 과자 봉지를 들고 있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면 저는 되돌아가서 계산을 하려고 몇 번씩 실랑이를 벌이곤 하지요.
(가끔씩 계산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
물론 저도 재작년과 작년에 주말농장을 할 때 상추나 고추, 열무같은 것을 많이 갖다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아저씨는 꼭 무언가를 손에 들려주시려 하였지요.
정아슈퍼네 입장에서는 저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제가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요.
작년 3월로 기억됩니다.
저녁에 담배를 사러 갔는데 그날 정아슈퍼네 아줌마는 책을 열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TV를 보고 있다가 반갑게 웃어야 정상인데....
그래서 무슨 책을 보시나하고 곁눈질로 살펴보니까, 천자문 책을 보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제목은 천자문인데 실용한자 위주로 나온 한자책으로써 상당한 난이도를 가진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웬 한자공부냐고 물으니까 웃으면서 그냥 소일삼아 본다고 하였습니다.
얼마가 지나서 알게 된 일인데, 정아슈퍼 아줌마가 천자문을 든 이유는 그 댁 큰아들이 그때
고3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정아슈퍼 아줌마는 밤낮없이 공부해야 하는 아들에게 힘을 줄 무언가를 찾다가 아들이
공부를 마치는 시간까지 같이 공부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정아슈퍼를 갈 때마다 정아슈퍼 아줌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가게를 하면서 한자공부를 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한 두 달 정도 하다가 말겠지' 하는 이상한 기대(?)를 가지고 가게를
갈 때마다 작은 계산대 겸 책상 위에 언제나 놓여있는 한자책을 보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책의 모서리는 낡아지고 낡아지는 만큼 두꺼워져 갔습니다.
결국 고3인 아들이 시험을 볼 무렵에는 정아슈퍼 아줌마가 그 책을 4번 정도 보았고
그 책에 있는 한자의 대부분은 익혔습니다.
언젠가 정아슈퍼 아줌마에게 책을 달라고 해서 본 적이 있는데....상당히 어려운 한자가
많더라구요.
저도 전공이 전공이라서 한자를 꽤나 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작년 겨울 무렵에는
그 아줌마의 한자 실력은 저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지요.
학력고사 전날 마눌에게 찹쌀떡을 사서 갖다 드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출근했다가 퇴근하여
물어보니까 그 가게가 바로 전날 서울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가게를 사서 이사를 했다더군요.
웬지 모를 아쉬움과 또 다른 이면에는 기쁨이 서로 교차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전인가 그 아줌마와 통화한 일이 있었습니다.
축하한다고 전하고 아들 진학에 대하여 물어보았습니다.
무난히 대학에 진학했다면서 고맙다고 그러더군요.
오늘 문득 정아슈퍼 아줌마의 시골처녀같은 수줍은 웃음과 정아슈퍼 아저씨의 하회탈같은
웃음이 생각나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자녀가 고3 인 부모님들이 혹은 점을 보러, 혹은 불공을 드리러 산지사방으로 분주한 모습은
쉬이 볼 수 있으나 정아슈퍼 아줌마처럼 자녀와 함께 공부하는 모습.........
아름답고 귀하지 않나요?
그리고 고3인 아들에게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사랑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
'이 꽃이 뭔지 아는 사람?' 하고 물으면 "분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시는 분이 많겠지요?
그러면 '왜 분꽃인지 아는 사람?'하고 물으면 올린 손 중에 일부는 내릴 겝니다.^^;
분꽃은 남아메리카 원산으로서 귀화식물입니다.
원래 다년초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기후로 인하여 1년초랍니다.
꽃은 가지 끝에 달리고 홍색, 황색, 흰색 등이 있습니다.
초가을이면 꽃이 진 자리에 팥알정도의 까만 열매가 맺습니다.
이렇게 까맣게 여문 열매를 까서 짖이기면 새하얀 가루가 생기는데 꼭 하얀 분가루 같지요.
그래서 분꽃입니다.
다음에는 립스틱꽃이나 메니큐어꽃을 올려볼까요?^^
2001. 8. 2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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