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죽는다.”

 

이 명제는 누구나 알고 있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주변에 이런 일이 생기면 항상 충격이고, 생경스럽게 느끼게 된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두 녀석의 자전거를 수리하면서 토요일 아침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시흥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가 있다.

“너, 이번 주 월요일에 OO이와 통화하지 않았냐??

“했는데...왜?”

“음..방금 경북 봉화 석포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OO이 차를 찾았는데, 사람은 없고 핸드폰만 있어서 통화기록을 보고 전화한다면서 연락이 왔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오후에 부서직원의 결혼식에 갔을 때, 대구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파출소에서 OO이 시신을 찾았다고...

차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머리 속이 하예졌다.

결혼식에 참석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시흥과 서울에 사는 두 친구와 연락을 하여 봉화로 내려가기로 했다.

우리의 모임은 대학교 1학년 때 부터였으니, 강산이 두번도 더 바뀔 동안 연락하고 만나온 친구들이었다.

7명의 친구들이 한결같이 지내자고 모임의 이름을 如一會로 하고 정기적, 비정기적 모임을 가졌다.

 

봉화로 가는 길에 부산에서 올라오는 친구가 시신이 봉화에서 안동으로 간다고 하여 안동으로 바로 도착했다.

졸업하고 제일 월급많은 그러나 스트레스도 가장 많이 주는 회사에 1년 남짓 근무하다 퇴직하고 공기업에 입사했다가 IMF 당시 퇴직하였고, 이후 가정불화, 이혼, 이혼한 아내가 재혼하면서 남겨진 딸을 데리고 고향인 안동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가까이 있는 대구에 사는 친구 2명을 만났고, 멀리 있는 친구에게는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시골에서 고립된 생활을 한 탓인지 영안실에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 여남은 명과 그 친구의 시골친구 일곱명이 전부였다.

초라한 분향실에 조화를 하나 주문하고 기다렸다.

다음날 입관이 끝나고 친구의 영정 앞에 섰을 때, 우리들은 참 많이도 울었다.

우리의 울음은 다시 가족들에게 전파가 되었고..............

향을 피우고 술을 한 잔 올리고 절을 하느라 엎드렸을 때, 또 한번 울음이 솟구쳤다.

 

그렇게 운다고 달라질 것은 없는데...

그냥 그렇게 눈물이 나왔다.

좀 더 전화를 하지 못한 미안함, 전화를 걸었을 때 눈치를 못챈 아둔함에 대한 자책이 가장 컸으리라...

 

그렇게 5월은 참으로 잔인하게 지나갔다.

많이 순하고 많이 착했던,

그래서 각박한 세상이 많이도 힘들었을 그 친구의 짧은 소풍에,

그 친구의 가는 길에 꽃 한 송이 올린다.

 

친.구.야.

네.가. 있.어.세.상.은.좀.더.따.뜻.했.었.단.다.

편.히.쉬.렴.

 

 

 

                                                                                                     2009. 6. 1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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