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처서, 입추가 다 지났는데

아래 지방에서는 폭염주의보라 한다.

한 낮의 태양은 아직도 살갗을 벗길 듯이 덤벼들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듯 부는 바람과

잠 들 무렵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이제는 지친 매미울음이 잠시 쉬는 틈을 타고

계절은 또 온다.

 

 

 

 

 

큰 인물의 스러지면서 시작한 여름은

또 큰 인물을 데려가면서야 막바지에 왔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배가 지나간다는 소식,

신종플루가 연일 번져나가고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

좁디 좁은 한반도를 삽질로 온통 헤집는다는 소문....

여름이 아니라도 더운 뉴스들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이제 가을이 오면 서늘해졌으면 좋겠다.

이번 가을에는,

세상에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사람들은 보기보다 무감각하게 살아 간다는 것,

20년을 기른 정도 돈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것,

눈물로 흥분할 일도 실상은 이슬처럼 가벼운 일이란 것,

세상 사는 사람 모두가 외롭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 가을은,

 나뭇잎이 낙엽되어 '간다'고만 가을이 아니라,

스러진 잎과 풀이 흙으로 돌아 '간다'고만 가을이 아니라

내  몸에 깃든 미망과 욕심과 조바심을 다 '가게'만드는

진짜 '가'을 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도 넉넉해 보이는 텅빈 들판이면

참 좋겠다.

 

2009. 8. 24.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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