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원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동네에서는 모두 그를 "사부로"라고, 또는 "일본징이"라고 불렀다.

어린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는 재일동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일본에서 오래 살다가 죄를

짓고 도망쳐 나왔다고도 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일본사람이라고도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쓰는 우리말에서 그

느낌은 전혀 없었다.

술에 찌든 시커먼 피부, 얼굴을 가득 덮은 수염, 넓지만 구부정한 어깨, 항상 술에 취한

모습과 광기가 보이는 눈매, 그리고 항상 빈둥거리는 모습...... 이게 그의 모습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그를 무서워했다.

동네 아이들 중에 누구도 그에게 맞았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누구나 그에게 맞을 거라는

공포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 심지어는 고등학교 다니는 형들도 그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우리는 학교갔다 오는 골목에 그가 보이면 그가 길을 비키기를 멀찌감치

서서 기다리거나, 먼 길을 돌아서 가곤했다. 그리고는 꽁무니가 빠지게 달음질치는

것이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새참이나 점심을 먹는 논두렁을 어슬렁거리며 막걸리를 얻어 마시는 게 그의 농번기였고,

농한기 때면 투전판에 기웃거리며 꽁지돈을 얻거나 술을 얻어 먹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렇게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그가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있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였다.

꽁무니에 무성한 소문을 달고서.....

일본에 다녀왔고 일본에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많다느니, 서울에 있는 조직폭력배(그의

후배들이라고 한다)에게 다녀왔다느니, 일본에 있는 처에게 다녀왔다느니 하는 등의

소문이었다.

그렇지만 돌아온 그의 모습은 일본에서 돈을 갖고 온 부유한 모습도, 조직폭력배들에게

섬김을 받은 근엄함(?)도, 처에게 몇 달 살다온 깔끔함도 전혀 없었다.

그를 혼자 마주치고 대화를 딱 한번 한 적이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 아니면 5학년 때로 생각되는데, 학교를 파하고 혼자 늦게 돌아오던

가을날이었을 거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혼자서 걸으면, 걸음이 늦어지고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그렇게 십리 길을 걸어오던 중간이었을 거다.

그곳은 에스낙고개로 불리는 작은 고개 길로서 인적이 없는 산길이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돌아보니, 그가 바로 등뒤에서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의 웃는 모습이 그렇게 무서워지게 느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도망쳐야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오금이 저려서 도망가지를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가 나에게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았는데 도망친다면, 그는 기분이 진짜

상하여 때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리기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따라온 그가 나에게 몇마디 말을 했는데, 당사도 마찬가지였지만 머리 속에 들어 온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몇 마디 말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한숨과 함께 한 말 한마디만 기억난다.

"사는 건 쉬운 게 아니야....."

지금 생각하면 그는 내가 그 말을 이해하라고 한 말은 아닌 듯 싶다.

아마도 자신에게 하는 독백이었을는지 모른다.

그는 그 이후 그렇게 몇 년을 더 살다가 동네를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객사했다느니, 일본에 가서 산다느니 하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어쩌다 오늘 아침에 그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시골 깡촌인 동네여자들에게는 이방인으로서의 동경을,

남자들로부터는 자유인으로서의 부러움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평생 시골깡촌을 떠나지 못하는 게 그들의 일반적인 생활이었고, 기껏 도회지

구경이라야 계를 모아서 헐레벌떡 관광버스를 타고 멀미만하다 다음날 돌아오는 게

전부인 그네들에게는 빈둥빈둥 놀고, 수시로 소문도 없이 아무 것도 구애받음이 없이

훌쩍 떠나고, 홀연히 돌아오는 그가 부러웠을 게다.

물론 그의 삶 전체가 부러운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그것은 어쩌면 아무 것에도 구애받음이 없는 "자유"가 아니었을까??



갑자기 사부로가 생각나네요.

예전 시골에는 이런 사람이 한 명씩 다 있었을 겁니다^^



2000. 7. 14 맑은 날 ksg4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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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보리를 많이 심었죠.

초봄에는 보리밭에 김매기로 파김치가 되곤 하였습니다.

특히 보리타작을 한 날이면 온 몸이 보리수염에 찔려서

벌겋게 달아오르곤 하였지요.

지금쯤이면 보리타작은 끝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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