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면에 가면 앉을 자리가 많다는 말이 아니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 말이지요.

이런 깊은 의미가 아니라도 지하철을 탈 때면, 특히 피곤하고 좀 멀리 가야할 때면 앉고 싶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면 불행한 사람이 몇 있습니다.


먼저 그 넓은 칸에서 혼자만 서서 갈 때는 많이 외롭지요.


그리고 자기보다 늦게 탄 사람은 벌써 앉아서 졸고 있는데, 자기 옆과 뒤쪽은 벌써 두세 번 씩 타고 내리고 했는데, 유독 자신만 앉아보지 못하고 주구장창 서서 갈 때는 서럽기도 합니다.


그보다 조금 더 못한 것은 자신의 앞에 앉은 사람이 정차할 역을 안내하는 멘트가 나올 적마다 가방을 만지작거려서 긴장을 하게 해 놓고는 그냥 계속 앉아 가는 ‘앉은이’ 앞에 서 있는 것으로 이 경우 얄밉고도 곤혹스럽습니다.


이 보다 조금 더 못한 것은 다행히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가 나서 선반에서 가방을 내려서 앉으러 가는데 발 빠른 사람이 새치기해버릴 때의 무안함이겠지요.


저는 학교 다닐 적부터 지하철을 곧잘 애용하는 편입니다.


대학 다닐 때 부산 남포동에서 지하철을 탄 일이 있습니다.

남산역까지 가야하니까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봐도 됩니다.

그 전날 친구들과 무리한 관계로 몸이 축 퍼지는, 그래서 기필코 앉고 싶은 그런 날이었지요.

지하철이 들어오고 타서 보니까, 자리는 없고 서너 명이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칸과 뒤칸을 긴 목을 십분 이용하여 살펴보니까, 그곳 사정도 비슷하였습니다.

이럴 때는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곳을 골라야 합니다.

자리당첨확률이 높거든요.

그 다음으로는 깨어있는 사람 앞에 서야합니다.

자는 사람은 종점 가까이 가거나, 가기 싫어도 가버리는 사람들이거든요.

그 다음으로는 학생들이 좋습니다.

대부분 학교와 집은 가까운 편이거든요.

그래서 타자마자 가장 요지인 곳을 점령하였습니다.

서 있는 사람 밀도가 낮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학생 앞에 자리를 잡고 섰습니다.

경험칙상 서너 정거장이면 앉을 수 있습니다.

범일동까지 갈 동안 여남 명이 내리고 타면서 좌석교체가 너댓 번 있었습니다.

‘뭐 이정도 쯤이야. 학생들이 서면에 놀러가나보다.’

이런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연 아이들이 범냇골 역을 출발하자 가방을 만지작거리더군요.

그래서 주위를 힐끔(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안 그럼 쪽팔립니다.)보면서 급습하는 경쟁자들이 없는지를 살펴보았으나 다행이 없었습니다.

서면에 도착하여 지하철이 서려고 할 때 아이들이 목을 쭈욱 빼더군요.

옆자리와 뒷좌석에는 성급한 승객들이 먼저 일어나고 일어나자마자 자리 승계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학생들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아~그런데 야속한 그넘들은 일어나지 않고 그냥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쯤에서는 아마도 처음 탈 때 앉았던 사람의 반쯤은 이미 내리고 나보다 늦게 탄 사람들이 거의 앉았고 그 중에는 이미 졸고 있는 사람도 있을 때이지요.

그 뒤로 지하철은 연산동, 교대역, 온천장까지 갈 동안 또 다시 자리 승계작업은 쉼없이 진행되어 거의 좌석 수만큼 이루어졌지만, 내 앞의 나쁜 두 놈은 졸지도 않은 채 그냥 소곤거리면서 앉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장전역이 지나면서 멀찌감치 자리가 한두 개 났지만, 그때는 이미 쪽팔려서 갈 수도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때쯤이면 속으로 이런 말을 중얼거립니다.

'야 임마~ 이제 일어나도 그냥 간다.' (누가 머랍니까?)

결국은 남산역 바로 앞 정류장인 구서동 역을 지나면서 세상에서 가장 나쁜 두 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야~ 니네들 어디까지 가냐?”


“네???? 범어사에 가는데요???”


‘아 이놈들아. 미리 말 좀 해주지..’


그 뒤로 저는 남포동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서면 앉고 싶음’이 유난히 간절해 보이는 사람이 앞에 서면 먼저 말을 건넵니다.


“저기요, 남산역까지 얼마 걸려요?”


그러면 그 사람은 곧 자리를 옮기지요.


~~~~~~~~~~~~~~~~~~~~~~~~~~~~~~


또 영양가없는 소리 했습니다.

마눌이 식품영양학과나왔고, 결혼 생활이 10년 넘었는데도 이 지경입니다.

여러분들도 지하철에서 앉아서 멀리 갈 때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 걸리는지 물어보세요.

속으로 감사해할지도 몰라요.^^;

 

2004. 2. 16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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