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自害)하는 사람을 보면 찜찜하다.
그런데 자해의 방식이 피를 본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형식을 취하면 겁이 난다.
즉 자신의 몸을 과감하게 캔버스로 제공하는 사람을 보면 겁이 난다는 말이다.
이건 나만이 아니라 캔버스들끼리도 그럴 것이다.
특히 그 지능이 호모 에렉투스에서 진화를 포기한 듯하고, 덩치가 큰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캔버스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서 뜨고, 젊은 아해들은 열광하기도 하고 과감히 그 길을 택하기도 한다.
보통은 그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한여름에 짧은 머리를 하고 긴팔 옷에 옷깃을 세우고 다니는 인물들을 보면 아마도 그들일 것이라고 짐작만 한다.
그런데 목욕탕에 가면 그들의 면목을 제대로 알 수 있다.
혹자는 그들의 팔에 『차카게 살자』, 『忍』 따위의 글을 새긴 것으로 보았다고 하면서 겁이 났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만, 아직 그런 구호를 본 적은 없다.
다만 전언에 의하면 『이제는 죽이지는 말자』라고 새긴 것을 보았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전한 사람이 글쓰는 사람과 비스무리한 인물이라서 믿음직스럽기가 끓는 국솥 곁에 어린애 둔 듯하다.
다만 용이나 호랑이 따위의 문신을 새긴 캔버스를 더러 볼 수 있는데 사람많은 대중탕에서야 별로 겁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는 캔버스들도 대체로 다소곳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런 캔버스를 떼거리로 혼자 마주친다면 어떠하겠는가?
그러니까 1992년 12월이니까 꽤 오래된 일이다.
그때 지금 다니는 회사의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였다.
따로 숙소가 제공되지 않아서 신촌로타리 부근에서 고시원 생활을 했다.
토요일 교육을 일찍 마치고 고시원에 와서 빨래를 대충하고 저녁 사 먹고 나니, 저녁 여덟시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빌려놓은 만화책도 없고 해서 목욕탕에 갈 생각을 했다.
신촌로타리에서 Y대 방면으로 좀 가다보면 오른쪽 골목어귀에 있는 목욕탕으로 기억된다.
늦은 시간이고 토요일이라서인지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고, 넓은 탕에 들어서니 호젓하기보다는 무슨 공포영화의 장면에 들어선 것처럼 기분이 찜찜하였다.
탕속에 들어가서야 물 위에 여기저기 떠다니는 반가운 사람흔적을 발견하고 다소 안심을 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불리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길래, ‘나 같이 할 일 없는 청춘이 또 하나 있구만’이라고 짐작하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발자국소리가 하나가 아니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보고는 경악을 하고 말았다.
문을 가득 채우는 덩치의 캔버스들이 줄줄이 그것도 엄숙하고도 조용하게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대충 보기에 8폭 병풍을 만들 만한 숫자였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앞만 보고 있었는데 이들이 차례대로 탕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탕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직은 물기가 진피층은 커녕 표피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두터운 때층을 겨우 적시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힘으로 벗겨보리라’라는 마음으로 다소곳하게 탕을 벗어나서 때밀칸 구석에 자리잡고 비누칠을 하였다.
그런데 캔버스떼들은 탕 속에 오래 눌러있지 않고 조금 있다 나오더니 때밀칸 여기저기로 들어가서 때밀 채비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있는 때밀칸에도 캔버스 두 개가 들어와서는 등 뒤에 앉는 것이었다.
'아 SSi바~ 하필 여기야. 저 캔버스들이 때를 밀어달라면 어쩌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번쩍 드는 것이었다.
상상해보시라.
그 넓은 등짝을 여덟 개를 다 밀고 있는 말라깽이 모습을...
푸르죽죽한 것이 때인지 그림인지 모르고 정신없이 밀다가 껍질이라도 벗긴다면...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그때는 조금 더 좋았던 머리를 굴렸다.
‘때야 몇 년을 안 벗겨도 살 수 있지만, 때 잘못밀다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
몸에 가득 비누를 칠하고도 때수건질 한번 못해보고 다시 물로 씻기 시작했다.
먼저 온수 조절에 극도의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뜨겁거나 차가운 물이 실수로 튀었다고 생각해보라?
누구나가 부담없는 무지근한 물온도를 맞춘다음 물을 찔~찔~ 조금씩 나오게 틀고서는 비누칠을 씻어내었다.
그때쯤 불기 시작한 때들은 밀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떨어지는 놈들이 있었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를 죽여서 조용히 탕을 벗어나니 그곳은 공기가 달랐다.
해방된 공간의 공기가 다르다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탈의실에서 수건으로 톡톡 치듯이 물기를 닦아내고(그렇게 물기를 닦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 구차해지므로 생략한다) 황급히 옷을 입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친구 한 명이 들어와서는 옷을 벗어놓고 휘파람을 불면서 탕으로 가는 것을 보고 말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친구의 휘파람소리는 문을 열면서 뚝 그쳤고, 문을 연 채 약간 갈등하던 그 친구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 탕 속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목욕탕을 나섰다.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논산훈련소에서 목욕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걸린 것 같았다.
지금도 밤 늦은 시간에는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특히 그곳이 유흥가이고 토요일이면....
말이 지나치게 길었다.
몇 마디로 줄이면 간단하다.
『토요일 밤 늦게 유흥가 목욕탕에 잘못가면, 감전사하지는 않더라도 기진맥진해서 죽을 수도 있다.』
이 글을 보고 웃으시는 분들이 없으리라 믿는다.
그 당시의 엄청난 공포감을 다시는 반추하기 싫음에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을 염려하여 과감히 고백하는 충정을 이해한다면 어느 누구도 웃진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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