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바람이 너무 좋아서 그냥 집에 있는 것은 자연이 주신 선물을 팽개치는 그런 짓이라는 죄책감이 자꾸 들었지요.

늦은 아침먹고 아이 두 녀석을 데리고 은행털러 나갔습니다.

윤석이는 '은행턴다'는 말이 재미난다고 히히덕 거립니다.

집 앞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서 흔드니까 그야말로 소나기 쏟아지듯이 떨어집니다.

두번이나 올라가서 흔들고 내려오니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다라이를 들고와서 줍고 있네요.

욕심나는 것은 아니라서 비닐봉지 한가득 주워서(그 아주머니는 다라이 반을 넘게 채웠어요) 비닐장갑을 끼고 깐 다음, 껍질은 경욱이가 그동안 파 놓은 흙구덩이에 넣어 묻고 집에 왔습니다.

냄새난다고 질색하는 각시를 무시하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몇 번을 씻어내니 냄새가 한결 덜 납니다.

담아보니 한 되 남짓......

베란다에 신문깔아서 말리고, 몇 개는 후라이팬에 구워먹어니 고소하기 그지 없습니다.

 

은행털기를 마치고 아이들보고 놀러 가자니 시험 마친 권리주장으로 하루 종일 컴퓨터 하겠다고 하네요.

그래서 각시 꼬셔서...하늘공원으로 가자고 했지요.

그것도 자전거타고 가자고...

아마도 집에서 하늘공원까지는 25킬로미터는 될 거리였지요.

1시 좀 넘어 출발,

준비물은 얼린 맥주 두 캔, 생수 한통, 시루떡 한 개, 똑딱이디카 1대 ...등산 배낭에 집어넣고 페달링을 했습니다.

안양천 자전거 길을 따라 목동운동장, 이대목동병원을 지나서 한강변에 도착하여 계속 페달링을 하여 가양대교를 자전거로 건넜습니다.

가양대교 건너서 수색가는 길이 보이고 우회전하여 얼마쯤 가니까 하늘공원이 보이더라구요.

언덕을 한참 올라가니까 입구가 보이고, 그곳에서는 자전거도 못들어가게 하더라구요.

 

2시50분에 도착, 하늘공원에 가니 사람이 많고 바람이 멋지게 불었습니다.

관리인 말로는 오만오천평이라고 하더군요.

20년도 더 된 옛날에 군복무시절 쓰레기를 버리러 온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상전벽해가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일었습니다.

사실 예전의 기억으로 어쩐지 불결하고 냄새나는 그런 곳이라는 선입감이 있었거든요.

자연은 그렇게도 위대했습니다.

한바퀴 휘 둘러보고, 한강조망도 좀 하고 억새 숲 길을 걷다가 4시가 좀 지나서 내려왔습니다.

자전거를 막 타려니까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배낭에 들어있는 비닐옷을 각시에게 입히고 다시 집으로 출발, 가양대교를 건너는데 바람에 뒤섞인 비가 얼굴을 때렸습니다.

그러고보니 얼굴에 비를 맞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했지요.

시야는 불편해도 기분은 아주 그만이었습니다.

안양천가까이 오자, 체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반팔티셔츠가 비에 홀딱 젖어서 벌벌 떨리더군요. ㅡ.ㅡ;

힘들어하는 각시를 독려하여 겨우 아파트에 도착하였습니다.

떡 한 조각씩 먹은 것은 벌써 소화가 다 되었는지, 배가 고파 죽을 지경...

아이들 생각은 뒷전이고, 식당부터 찾았습니다.

비 쫄딱 맞은 몰골로 식당에 들어서니 무엇보다도 대단하다는 눈치가 흐믓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자식 팽개치고 식사를 하고 집에 오니, 아이들은 아직도 스타크에 푹 빠져서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바쁘기만 합니다.

 

2007.10.8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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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기다리는 하얀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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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맞아 환호하는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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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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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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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를 등지고 핀 해바라기..>

 

유감스럽게도 하늘공원에 매점이 없었고, 가지고간 디카는 배터리가 없었지요.

그래서 핸드폰으로 찍은 허접한 사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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