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다

 

봄이 턱까지 차올랐다.

여린 매화에 뭍어 왔다가 대추나무

가지에 늦은 싹을 틔우고 떠났다

 

우산없이 꽃 비를 맞은 청춘은

온몸으로 호된 몸살을 앓았다

나이 많은 몇은 밭은 숨을 내쉬다

어깨로 마지막 숨을 몰아쉰 뒤

낙화하는 복사꽃따라  떠났다.

 

봄도 사람이 살아야하는 계절

갖은 음모와 시기와 질투는 여전했고

제대로 썩은 냄새는 천지를 덮어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가난한 어깨를 짓눌렀다

 

연두빛 느티나무 그늘을 빌려

지친 몸 뉘어 꿈을 꾸고 싶다

나비의 꿈에 내가 있는지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좋았다

다만 꿈에서 깨지 말기만을 바랬다.

 

                       2012. 5. 8  맑은날

 

 

유독 많은 이의 부고를 받은 봄이었다.

뉴스에는 온갖 추접한 풍문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살아가는 일은 늘 그렇듯 만만치 않은 일이었는데

어떤 이는 장난처럼 쉽게 살아가고 있어 더 힘겨웠다.

 

유레카님의 사진을 빌어 몇 자 적어보다.

 

'생각없이 하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글픔  (0) 2012.06.04
해가 지다.  (0) 2012.05.31
어떤 기다림  (0) 2012.05.07
어떤 풍경  (0) 2012.05.04
나는 게으르고 싶다.  (0) 2012.03.20

 

 

어떤 기다림

 

옛날의 더 옛날, 봉황이 있어 신수(神樹)에 둥지틀고 신수열매만 먹었더라.

사람이 살며 신수를 베어 땔감으로 혹은 집을 짓기 시작한지 얼마지 않아 신수는

더 이상 사람의 땅에서 볼 수가 없었기에 봉황들은나래를 어디서 쉬고 먹이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의논을 하였더라. 그 재질이 가벼워 욕심이 없으되 그 속이 비어

단단한 결기를 지녔으며, 맑고 청아한 가락을 품어 가야금이 되어지는 오동으로 하기로

하였더라. 봉황은 그때부터 오동나무에 쉬고 오동열매를 먹었는데 사람들이 배가 부르자

사치를 즐기면서 오동 옷장을 만들고 혹은 가벼운 상자로 만들어 칼과 활을 담기 시작하며

오동의 고결함이 더럽혀지게 되었더라. 다시 봉황은 모임을 하였으나 사람 땅에는

더 이상 쉴 곳과 먹을 것이 없었더라. 봉황은 하나 둘 신선의 세계로 돌아가고 사람 땅에는

더 이상 봉황을 볼 수가 없었더라. 봉황이 떠난 사람 땅은 질병과 기근이 생기고 수명이

짧아졌으나 사람은 그것이 제 욕심에서 생겼음을 아지 못하고 더욱 탐욕이 늘어났더라.

오동은 이 봄에도 신화적 봉황을 기다리며 보랏빛 꽃을 곱게 피웠지만 그 가지에는

까마귀가 쉬어가고 그 열매는 참새들이 먹더라. 이것은 해마다 오동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만 봉황을 볼 수 없는 까닭이다.

봉황은 뜻이 없지만 오동의 기다림은 오월마다 꽃으로 피어난다.

 

 

 

유독 늦은 오동이 꽃을 피웁니다.

오동도 여느 봄꽃처럼 꽃부터 피우는데 5월이 되어서야 꽃을 보입니다.

꽃모양은 참깨꽃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봉황이 천리를 날면서 오동나무에 앉아 쉬고 열매도 오동열매만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조나 절개를 이야기할 때 흔히 말하지요.

가락이 있는 나무라고 불리워집니다.

이런 나무라면 전설이 하나쯤 붙어 있겠지요,

그래서 멋대로 전설을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전해지기만 하면 제대로된 전설이 될터이지요. ^^

 

                                                                                 2012. 5. 7  맑은날

 

'생각없이 하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가 지다.  (0) 2012.05.31
봄이 지다.  (0) 2012.05.08
어떤 풍경  (0) 2012.05.04
나는 게으르고 싶다.  (0) 2012.03.20
존재의 의미  (0) 2012.03.07

 

내 비록 한 줌되는 초록이라도

네 창가에서 생명의 흔적 된다면

 

내 비록 봉황은 앉히지 못할 지라도

길 잃은 참새 잠시 쉬는 가지되고

그 참새 울음 삶의 소리 된다면

 

한 치 양보않는 시멘트 틈 마다않고

하루 한 시간 조각볕을 아끼고 아껴모아

녹이 낀 네 창가 작은 풍경될텐데

 

 

* 대구 종로거리 작은 골목길에서 팽나무를 보다.

 

  2012. 5. 4  맑은날

'생각없이 하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지다.  (0) 2012.05.08
어떤 기다림  (0) 2012.05.07
나는 게으르고 싶다.  (0) 2012.03.20
존재의 의미  (0) 2012.03.07
시 하나<안도현-강>  (0) 2011.12.09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 새삼 화제가 된다.

방송국 파업과 맞물려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는 전현무라는 친구가 근육자랑했다가 트윗에서 쓴소리 들으면서 화제가 된 것이다.

 

알아보니 "남자가 죽기 전에 해야하는 101가지"라는 주제로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하는 것이다,

 

합창도 하고,

근육도 키우고,

전투기도 탑승하고,

댄스도 하고,

배낭여행도 가고....

.......

 

씨바,

101가지라니 많기도 하다.

 

결국.... 난 남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도 아니니 호모인가? 아니면 짐승인가?

 

매체의 발달은 인간을 왜소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어떤 재능이 있으면 지역사회(적게는 마을, 크게는 군단위...)에서 뿌듯해할 수 있었고

칭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젠 곧바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비교되니 재능있는 사람의 수와 재능의 질은 엄청나게 많아지고 높아진 듯 하지만, 막상 그런 사람이 주변에는 한 명도 없다.

수십억 인구중 몇명이 우리 곁에 있을 확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나노보다 작은 세계를 볼 수 있고, 나노단위의 물건을 가공하는가 하면, 태양계를 넘어가는 우주선을 쏘아 보낼 수도 있고, 수십억년 전의 우주물질을 관측할 수도 있다.

인간 자체로만 보더라도 아주 왜소하고 병약한 사람이 노력에 따라서 우람한 근육질로 바꿀 수도 있고,

독한 자기관리와 치료 등의 도움으로 나이 60세에도 30세의 피부와 몸매를 유지할 수도 있으며,

늘 꼴찌하던 친구가 독종같이 공부를 하여 2년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도 많다.

엄마친구 중에, 아빠친구 중에, 친구 아빠 중에 항상 그런 사람이 득실거린다.

 

그런데...

아들은 항상 그렇지 못하고,

딸은 늘 말썽이며, 

아빠는 늘 무능하고, 

엄마는 게으르다.

 

정보매체의 발달에 따라 항상 조바심에 쫒기게 된다.

김윤석이도 근율질로 바뀌었는데 나는 한심하게도 떵배나 키우고 있다.

나보다 못난 환경에서 아이들을 잘도 키운 사람이 있던데 나는 무능하게도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

누군가는 2주만에 10킬로의 살을 뺐다는데 난 3년째 실패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한번의 결심으로 금연을 성공했는데 나는 날마다 금연에 도전만 하고 실패를 한다.

 

늘 실패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나는 루저인가?

 

인간은 50만년 동안 진화를 해서 현재 인간이 되었다.

그 진화의 목적은 "능숙하고 효율적인 수렵생활"이 목적이었다.

일주일간 굶다가 양이라도 한 마리 잡으면 며칠간 포식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도록 진화했다.

삼각함수나 재능에 없는 음악이나 미술을 배우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고,

현관 앞, 은행창구, 컴퓨터 앞에서 비밀번호를 기억해내도록 진화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50만년이나 진화에 맞춰온 인간의 몸과 정신을

어느 순간 몸매관리, 친구관리, 지식관리, 정보관리, 관계관리 등을 한꺼번에 하라니..

과연 몇명이나 가능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지구상의 인류는 이러한 불가능한 일에 끊임없이 부딪히고 실패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내가 살아갈 70년보다는 , 내가 지금에 이른 지난 50만년의 기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존중하고 싶다.

눈 앞에 당장 먹을 것이 있고 한동안 걱정이 없으니,

양지바른 곳에서 졸기도 하고, 이도 잡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좀 게을러져야 겠다.

 

고로 난 남자의 자격이 없다.

니들의 기준에 따르면.....

니들이 남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좀 게을러지고 싶다.

 

2012. 3. 20  맑은날

 

'생각없이 하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기다림  (0) 2012.05.07
어떤 풍경  (0) 2012.05.04
존재의 의미  (0) 2012.03.07
시 하나<안도현-강>  (0) 2011.12.09
고대녀 김지윤, “아프니까 청춘"이라 하기엔 너무 아프다.  (0) 2011.11.18

 

1977년 8월 보이저 2호가 지구를 출발했다.

12년 6개월이 지난 1990년 2월 명왕성 궤도에 도착한 보이저 2호는 카메라를 지구를 향해 돌렸다.

 

 

 

칼 세이건이 말하는 "창백한 푸른 점"이 지구이다.

 

그때,

나는 대학교 2년 복학을 눈 앞에 두고 사법시험서를 보고 있었다.

영도에 있는 새마을 독서실 302호에서...

차들은 도로를 메웠고,

상인들은 물건을 팔기위해 목청을 높였고,

농민들은 비닐하우스에 온도를 높여 생산하고 있었으며,

정치인들은 그들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라크에는 핵무기 사찰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았다.

국제유가는 오르기도 했었다.

수 백 가지 종교단체에서는 그들의 신을 모시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아우성치기도 했었다.

잘난 사람은 콧대를 높이고 못난 사람은 기가 죽어 있었다.

 

수 천억개의 은하가 모인 우주의 한 귀퉁이, 그 은하의 꼬리부분에 따로 떨어진 태양계, 그 태양계의 3번재 작은 행성에서, 150억년의 우주역사 중 한 찰나를 그린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논외로 치고 그럴 것이라고 상상하기라도 하겠는가?

저 작은 점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며칠 전 고3인 아이와 각시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함께 열을 내고 아이를 혼내고 했는데...

마음이 쓰라리다.

 

어제 회사내 승진 인사가 있었다.

승진에 탈락한 직원을 먼저 위로해 주었다.

빨라도 2-3년 늦어도 2-3년인데 우리는 그것을 큰 문제라 한다.

 

우주를 생각하면 모든 것은 마음을 담을 큰 문제도 아니고 마음을 담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봄이다.

마음에 우주를 담아보자.

 

2012. 3. 7  맑은날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의 '강' 전문 -

 

 

<2010년 11월 밀양 영남루에서 본 밀양강>

 

옛날 '공무도하가' 이래 정지상의 '송인'과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강은 건널 수 없는 그 무엇이었고, 님과의 별리(別離)의 매개체였다.

눈물로 강은 만든다는 모티브는 정지상의 송인에서 빌렸으리라.

그러나 안도현의 눈물로 새로 만든 강은 멀리 떨어진 님에게 나를 데려다 주는 강이다.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그 먼 곳에 님이 있나보다.

우리가 그리는 참다운 님은 가파른 세류에 따라 점점 멀어져서

이제는 배를 타지 않고서는 이를 수 없이 멀어졌나보다.

 

                                                                               2011. 12. 9  맑은날 

 

많이 아팠구나.

어느새 중년으로 접어드는 우리는 '나는 가수다'를 입 벌리고 멍청히 쳐다보고,

유명가수의 이혼소송 기사나 뒤지고 있었는데 너희들은 많이 아팠구나.

우리가 대학 다닐 무렵에는 등록금은 그리 큰 걱정이 아니었는데,

아직도 우리는 그때 생각만하면서 참여의식이 부족한 세대라고 너희들을 나무라고 경시하기만 했구나.

이제는 대학교 경쟁력이란 미명하에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고 그 돈벌이 성패가 학교 서열이 되었구나.

동창회에서 문자나 전화로 각종 명목으로 천발스럽고 구차할 정도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 부쩍 늘었구나 했는데, 그것도 돈벌이 수단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이 하루종일 연예인 가십거리나 주고받고,

짝퉁이라도 명품을 가지고 싶어 비굴하고 구차하게 사는가보다 했는데,

너처럼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입 크게 벌리고 고함을 치는 젊은이도 있었구나.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너의 입에서 미래를 본다.

그러나...너와 같은 눈과 입은 너무나 적기만 하구나.

 

~~~~~~~~~~~~~~~~~~~~~~~~~~~~~~~~~~~~~~~~~~~~~~~~~~~~~~~~

 

[연속 기고 'FTA와 나'] <3> 대학생편


"우리 미래를 당신들 이익을 위해 팔지 말라"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하버드대 학생들이 맨큐 교수의 수업을 거부하고 월가 점거 시위에 동참했다고 한다.

 맨큐가 누구던가. 주류 경제학의 대가 아니던가. 경제학 수업을 듣는 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맨큐의 경제학>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 맨큐 교수에게 '지금의 불평등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금융 자본의 이윤만을 위한 당신의 이론은 틀렸다.' 하고 말하다니!

 

  

 하버드대 학생들은 아예 창립자 기념 동상 주변에 텐트를 치고 "우리는 99%를 위한 대학을 원한다"고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가슴이 뛰기도 했다.

 맨큐를 버린 하버드생들

 내가 다니는 고려대학교는 신자유주의 교육의 선두주자를 자임해 왔다. 교육이 아니라 돈벌이에 혈안이 된 대학, 연대와 협력이 아니라 경쟁과 효율이 지배하는 대학, 1%를 육성하느라 99%를 희생시키는 대학이 바로 오늘날 대학의 모습이다.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시절부터 고려대학교는 미국식 교육을 적극 도입했다. 당시 어윤대
총장은 "(미국과 비교해 봤을 때) 1년 등록금이 1500만원은 돼야 한다." 하고 말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글로벌 고대, 세계 100대 대학을 외치며 외관을 번지르르하게 바꾸고 기업체에 와인을 돌리는 동안,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에 고통받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신음해야 했다.

 그런데 만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이 발효된다면 교육 상품화가 얼마나 더 많이 벌어질지 아찔하다. 교육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많은 대학이 미국, 영국의 유명 대학들과의(혹은 일부가 주장하듯 세계 유명 대학의 분교가 들어설 테니 이들과의) 경쟁을 내세워 여러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등록금을 인상하고 신자유주의적 커리큘럼을 강요하고 영어 강의를 더욱 확대할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경비 절감을 이유로 미화노동자, 경비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을 강요할 것이다.

 대학의 영리추구 역시 정당화될 것이다. 이미 많은 대학이 값비싼 민자 기숙사를 짓고, 대학의 이름을 딴 상품을 판매하고 스스로 기술 지주회사를 설립하며 스스로를 기업처럼 운영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교육을 시장에 내맡기고 상품화하면 그것이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부담과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그런데 교육마저 상품화하는 한미 FTA가 발표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반값등록금 시행 요구 등 교육 공공성 강화에 대한 열망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미 FTA는 사람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프다

 문제는 교육 상품화만이 아니다. 한미 FTA 이후 강화될 고용유연화, 비정규직 확대는 어렵사리 졸업해도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미래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공공부문을 민영화할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놓은 한미 FTA가 발효된다면 가뜩이나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청년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것이다.

 월가 점거 시위대가 "은행이 아니라 99%를 구제하라", "내가 일자리가 있었다면 이곳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는 팻말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정말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 아닌가.

 이제 1%만을 위한 대학과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 99%가 원하는 대학, 99퍼센트가 행복한 사회와 한미 FTA는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에는 그 고통이 너무 크다.

 지금 정부는 우리에게 더 큰 고통을 감내하라고 강요하려 한다. 나는 내 삶을 지키고 싶다. 저임금 저질 일자리뿐인 미래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의 삶도 지키고 싶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돈을 벌다 죽는 친구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경쟁과 효율만이 최우선 되는 팍팍한 대학 교육, 그 속에 꿈을 잃고 마는 청춘들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팔지 말라" 거리를 점령하고 싸우고 있는 칠레의 대학생들이 외치는 구호다. 한미 FTA를 강행하려는 자들에게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우리의 미래를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 팔지 말라!"

 
김지윤(고려대학교 문과대 학생)

 

 

'생각없이 하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의 의미  (0) 2012.03.07
시 하나<안도현-강>  (0) 2011.12.09
세상을 바꾸는 우직한 힘  (0) 2011.09.30
곽노현 교육감 영장실질심사 최후진술문 전문 <인용>  (0) 2011.09.23
의지되는 사람  (0) 2011.06.27

 

현명하게 산다는 것은 세상에 자신을 맞추어 살 줄 안다는 것입니다.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가면 편안하게 멀리 그리고 빨리 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 것은 바로 이런 우직한 사람들이 수 없이 자신을 던져 세상에 부딪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퍼온 사진>

 

좀 잘 사는, 그래서 강남에서 사는 친구가 어제 전화를 했습니다.

딸 아이가 청계천 집회에 갔는데 추운 날씨에 걱정이라고...

 

인터넷을 잠시 살펴보니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대학생의 집회였는데 경찰이 물대포를 쏘면서 도로진출을 차단하고 연행을 했다고 합니다.

분명 이 정부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한 약속을 그것도 출범초기도 아닌 충분히 기다린 이후에 하는 정당한 요구임에도 쌀쌀한 가을날씨에 물대포로 그들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친구의 딸이 저기 어디멘가 추위에 떨겠구나 하는 안쓰러움과 함께 그녀의 용기와 진정성과 실천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트친이 청계천 소식을 듣고 빈 주머니 털어서 햄버거 5개 사서 학생들에게 건네 준 이야기며,

김제동씨가 주머니 몽땅 털어서 아이들에게 먹거리를 사 준 이야기도 들립니다.

이런 이야기도 미련스런 사람의 황당한 이야기로 생각해버리는 세상입니다.

저는 그나마 이런 이야기에 미안해하고 고마워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등록금이 없어서 입대한 아이들로 하여금 등록금 인하시위를 막게 하는 힘겨운 날입니다.

 

 

 

제 입장을 간략하게나마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과 달리 진실은 인격적이고 규범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은 고해의 대상이지 공방의 대상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건 때로는 불편하고 위태롭고 두렵기조차 합니다.
정황에 따라서는 너무나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겪다보니 결국은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진실이 오래간다는 걸, 결국은 승리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진실에 대한 고해성사만이 나를 살리고 사회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사건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기자회견을 통해, 그리고 검찰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숨김없이 말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했습니다.
설령 여론의 법정에서 잠시 동안 오해와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국가의 법정에서 법적으로 자기부죄의 위험성이 있을지언정
진실에만 충성하고자 했습니다.
개인의 방어권을 아랑곳하지 않고, 법정공방의 기법에 연연하지 않고, 공인으로서 설명 책임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1억3천까지 나온 상황에서 2억원을 건넸다고 더 큰 액수를 시인한 게 좋은 예입니다. 

저는 중범죄의 피의자로서는 이례적으로 검찰조사에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
거침없이 제 입장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의 녹취록이나 영상녹화CD를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검찰의 수사목표와 질문의도를 잘 알고 있지만,
오해를 혹시 심화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도 진실의 정화력을 믿고 모든 사실을 말했습니다.
잡아떼거나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나는 후보직을 매수하려 한 적이 없습니다.
동서지간인 실무자들 사이의 약속 같지 않은 구두약속에 대해서는 10월말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위임한 적도, 보고 받은 적도, 승인한 적도 없는 동서지간의 독단적인 충정에 입각한 해프닝이었습니다.
권원 없는 사람들의 비진의의사표시의 편의적 결합이었습니다.
자체 조사과정을 통해 인지하고 나서는 법적 도덕적 의무가 없음을 명백히 하고 추인한 적이 없습니다. 

둘째, 해프닝 때문에 박명기 교수한테 저에 대한 오해와 불신, 원망이 쌓였고, 이것 때문에 저도 불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정책연대의 파트너로서 친밀한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사이가 멀어지고 벌어지기만 했습니다.
해프닝과 그로 말미암은 오해의 벽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오해할만한 해프닝이 없었더라면, 즉, 정말로 조건 없는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그리하여 박 교수와 제가 형님 아우로서, 교육개혁의 든든한 동반자로 원만한 관계가 설정되었더라면
보다 일찍 공개적인 방식으로 박 교수에게 긴급부조를 행해서 급한 불을 꺼줬을 겁니다.
교육개혁의 동지이자 동반자가 길거리에 나앉는 걸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는 아닐 겁니다. 

무릇 긴급부조는 친밀한 사이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한 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저는 강경선 교수의 지혜로운 노력으로 박 교수의 오해와 원망이 풀리고 화해와 일치가 찾아왔을 때,
다시 말해서 박 교수의 자세가 해프닝에 기초한 권리모드에서 형제애에 기초한 구제모드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이 원칙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하였고, 그러면서 긴급부조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1월 하순께입니다.
첫눈이 탐스럽게 내리던 11월28일자 따뜻했던 저녁회동은 형제애의 확인 자리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리 선의라 할지라도 드러나면 요즘의 사태전개에서 드러나듯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가 빚어지고 교육감 직에 누를 끼칠 일이기에 평생 처음, 조심스런 마음으로
남 몰래 현금으로 진행한 일이었습니다.
금액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불법의 관점에서 보면 2억은 몹시 큰돈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빚더미에 내몰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살린다는 선의의 관점에서 보면 적을 수도 있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떳떳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늘 마음 한켠에서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박명기 교수를 극도의 곤궁에서 벗어나게 해 살리는 일이었고,
제 40년 친구의 잘못된 판단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살리는 길이었으며,
단일화를 바랐던 민주진보진영의 도덕성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교육감직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몹시 힘들지만 홀로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저의 멍에, 저의 십자가였습니다. 

아무리 제가 저 자신의 무죄를 확신해도 제 일로 사회적 물의가 빚어지고 제 사건을 놓고 사회적 이견과 갈등이 심합니다.
교육행정 및 교육정책 혁신동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적 비용이 몹시 큽니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사회적 비용을 능가하는 사회적 가치와 교훈이 도출되지 않는다면 저는 사회적 죄인에 다름 아닙니다.
나는 이런 인식 아래 사법절차에 임하면서 사자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높은 정직과 진실에의 충성의무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경위야 어떻든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수도 서울의 교육수장으로서 좀 더 슬기로운 방법은 없었는지 되묻기도 합니다.
제가 이 시점에서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제게 부여된 교육혁신의 소임을 수행하는 데 차질이 빚어지지 않는 것뿐입니다. 

판사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 

 

그 사람을 아는 방법은 살아온 발자취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곽교육감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알아본 몇 개의 자료에 미루어 보면 그는 필부가 아님은 분명하다.

 

"아니, 대가없이 2억원을 줄 수 있다고?"

 

이 말이 세간에서, 언론에서, 검찰에서, 법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일 게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떠한가?

50살 넘은 남자가 사업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욕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면 믿을 수 있는가?

새벽 3시에 차량없는 서울대 교내 도로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 사람일까?

서울시장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뒤축이 다 떨어진 낡은 구두를 신고 카메라앞에 선다면?

친구에게 아파트 한 채를 사서 주는 사람이 있다면?

욕 못하고 신호기다리는 사람은 안철수이다. 뒤축 닳은 구두 주인은 박원순이고, 친구에게 아파트 사 준 사람은 곽노현이다.(친구는 강경선교수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가치관이 사물을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한다.

위 말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 자신의 가치관이 지나치게 돈에 찌들었거나, 약삭 빠르거나, 옹졸하지 않은지부터 반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 또한 그러해야 할터이고...

 

붕(鵬)의 날개를 30센티 자로 재려고 덤비지 말아야 할 일이다.

 

2011. 9. 23 맑은날

 

 

 

<2011년 6월 관악산에서>

 

 

 

관악산에

서울공대 방면 하산길에

 산벗나무 한 그루가 있다.

때 마침 그곳이 가파른 곳이라서

하산하거나 등산하는 이들 모두

의지가 필요한 곳이다.

몇 년간 관악산을 오르면서

그 길을 갈 때마다

그 나무를 한번씩은 잡고 의지하게 된다.

그래선지 그 나무의 중동은

사람의 손길로 매끈하다 못해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그럼에도 그 나무는

사람들의 기댐을 배려해서인지

줄기와 뿌리는 여느 나무보다도 탄탄하다.

 

힘든 일을 겪은지 달포가 지났다.

사람이란 것이

사람 자체의 존재, 알아줌, 들어줌, 보아줌

그 자체로도 큰 위안을 주고받는 존재임을 알았다.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이제부터는

관악산의 산벗나무처럼

바램없이 누군가가

 의지할 곳을 필요로 하면

손을,

팔을,

등을 

선뜻 내밀며

살.아.야.겠.다.

 

2011. 6. 27  맑은날.

 

 

많은 분들이 제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파해주셨습니다.

남들이 같이 아파해주면 내 아픔이 줄어듦을 배웠습니다.

아파해야 할 곳에는 진심으로 아파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Recent posts